낯선 어휘 직면땐 상황적 맥락 추리

역대급 불수능이라 불리는 국어영역 시험을 마라톤에 비유해보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쉽게 이해가 된다. 10㎞(1만m)를 80분(4800초)동안 완주해야하는 마라톤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평균 잡아 1초에 2.08m를 달리면 된다. 하지만 평상시에 기초체력이 없다면 초반이 아닌 중후반부터는 속도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고 시간 내에 마라톤은 완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길이 비탈지거나 장애물이 많은 곳이라면 더더욱 힘든 경주가 될 것이다. 이를 우리 아이들의 독서체력과 어휘체력으로 바꿔 생각해보자. 과연 우리 아이가 문장을 읽고 요약해내는 독해력과 낯선 어휘들을 추리하여 맥락을 이어가는 기초체력이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결과는 의외로 쉽게 나올 지도 모르겠다.

이번 수능도 당일 시험지가 공개된 직후 점수가 예년보다 약간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것은 현 수능세대 아이들의 언어체력을 과신한 오판이었다. 수능시험의 변별력은 국어적 지식개념에서 논리적 사고력과 독해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선회한지 벌써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국어교육이 사고력과 독해력을 본질적으로 성장시키고자 하는 교육인지 묻고 싶다. 아직도 어휘력을 기르겠다고 보도 듣도 못한 사자성어를 외우게 하거나 독해력을 기르겠다고 문학 작품만을 읽게 시키거나 사고력을 기르겠다고 피상적 글쓰기와 토론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볼 시점이다.

국어능력은 논리적 사고와 독서 습관에서 나온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므로 글을 읽을 때에도 객관적 사실과 엄격한 논리를 토대로 사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실적 읽기능력과 논리적 사고 습관이 우선이다. 바른 독서 방법은 사실적 이해력과 판단능력을 빠르고 정확하게 만들어 준다. 이것이 국어와 논술 공부의 시작이다.

수능은 4800초의 시간동안 1만 단어의 독서를 하는 경주와 같다. 대략 1초에 2.08단어를 판독하는 속도와 정확도가 없다면 수능지문은 끝까지 읽지도 못한다. 똑딱! 하는 1초의 순간에 익숙한 단어를 떠올리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개인차는 있지만 익숙한 단어들은 1초의 순간에도 10-30개 이상의 단어를 인간은 판독해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낯설고 어려운 단어(개념어, 전문어, 한자어, 외래어 등)에 직면했을 때다. 낯설고 어려운 단어는 읽기의 흐름을 놓치게 하고 전체적 이해와 기억을 방해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문맥과 어원과 상황적 맥락을 다면적으로 추리할 수 있는 사람의 경우는 흐름을 놓치지 않고 이해와 기억까지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독서능력의 개인차가 발생하고 성적차이도 나타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학습자의 어취추론 능력과 문장독해 능력을 먼저 측정하고 그 수준에 맞는 학습이 우선돼야 근본적 효과를 볼 수 있다.

현재 입시방향은 정량적 결과보다 과정과 수행을 중시한다. 따라서 청소년기의 국어와 논술 학습은 그동안의 잘못된 독서습관을 모두 버리고 정독방법을 배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저 많은 양의 독서를 하고 국어나 논술수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사실적 읽기능력과 논리적 사고력을 갖췄다고 볼 수는 없다. 평상시에 책을 읽고 전체의 스토리를 요약하지 못하거나, 주제문을 정리하지 못하면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또 인상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에 그치고 선생님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가는 아이들은 특히 더 주의해 살펴보기 바란다. 어휘추론 능력을 길러주고 사실적인 읽기능력을 바탕으로 학교별 교과 내신수업과 영역별 수능수업, 토론, 글쓰기, 입시논술 수업이 이뤄진다면 분명히 최선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최강 미담국어논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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