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친박·복당파, 당권보다 자숙할 때

`진보와 보수라는 두 수레바퀴가 튼튼해야 한다`고 강조한 진보학계 거목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주장처럼 건강한 보수정당 재건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제1야당이자, 보수성향인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를 건전하게 견제감시할 수 있는 정당으로 보기엔 지지율 측면에서 자격미달이다. 역대 선거에서 제1보수정당의 지지율은 아무리 낮아도 30% 미만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대통령 탄핵 후폭풍을 겪은 한국당만이 10%대를 오갈 뿐이다. 최근 20%대를 회복했다고 하지만, 전통적 보수층을 대변하는 대표성을 부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단언컨데, 박근혜 정부의 실패와 당 몰락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채 오히려 계파별 주도권 잡기에만 골몰한다면 기존 지지층도 돌아서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현재 한국당 내 그 누구도 실패와 몰락에 따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친박`이라 불렸던 중진들은 책임을 통감하고 당의 중심에 서려 하지 말아야 한다. 한때 당을 등졌던 이들이 목소리 높여 친박 청산을 외치거나 당권경쟁에 나서는 모양새도 국민여론과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새로운 원내지도부 선출을 앞두고 또 다시 계파논쟁이 재연될 기미다. 나아가 내년 2월 전당대회에 맞춰 당권을 잡기 위한 물밑 이합집산이 이미 시작됐다는 소문마저 파다하다. 물론 친박이든, 복당파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더라도,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한다면 원내 지도부나 당권을 장악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민심은 더욱 멀어질 수 밖에 없고, 당의 몰락과 차기 선거에서의 참패는 불문가지다.

이미 각 계파의 상징적인 거물들이 제명 또는 불출마 선언을 했으니 책임을 다했다거나,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는데, 주객이 전도된 꼴이다. 용서의 주체는 국민이며, 책임의 범위와 한계를 정하는 것도 그들 몫이 아니다. 올초 영국 국제개발부 부장관은 국회 출석에 3분 지각한 책임을 지겠다며 사직서를 제출했다. 평소 그의 업무스타일을 지켜봤던 국민들 사이에선 `그 정도로 책임질 사안은 아니다`라는 여론이 형성됐고, 사퇴는 곧 철회됐다. 위정자는 남이 아닌 자신에게 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하고, 용서받을 시기와 범위는 주권자들이 정해주는 것이다. 잘못을 저지른 정치인이 `이제 충분히 반성했으니, 국민들은 더 이상 책임을 묻지말고 용서해라`고 강요해선 안된다는 말이다.

요즘 대전 정가에선 민주당 박범계 의원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핵심 쟁점은 김소연 대전시의원의 폭로로 촉발된 불법 정치자금 의혹이지만, 진실여부를 떠나 박 의원의 대응에 아쉬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해명대로 자신은 정치자금과 무관하고, 일련의 과정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정치적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돈을 주고 받았다는 모든 관련자들이 그의 책임하에 있던 이들이거나 측근이다. 심지어 검찰에 구속된 전직 시의원은 최 측근이었으며, 김 시의원은 그가 직접 단수공천한 만큼 주권자 앞에 보증을 선 것과 다름아니다.

물론 진실 규명은 필요하다. 더구나 수사기관에 고소고발됐으니, 적극적인 법정대응도 해야 한다. 하지만 스스로 책임을 통감하며 주권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게 선행됐어야 했다. 무엇보다 김 시의원의 폭로이후 최 측근이었던 전직 시의원이 구속됐음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가 `정치적 책임`에 대한 첫 공식사과를 하면서 전날 중앙당 당무감사원장으로 임명된 사실을 언급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책임에 대한 사과는 단 몇 줄에 불과했고,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언급도 없었다. 오히려 당직 임명에 방점을 둔 사과문은 당 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엄중히 다뤄야 할 감사직을 맡게 됐으니, 당에서 그의 무고함을 인증한 것이라는 취지로 들렸다.

정치철학자 막스베버는 정치인이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책임감을 꼽았다. 위정자는 자신의 결정과 행위에 따른 직접적인 결과는 물론 의도하지 않은 후폭풍까지 책임져야 한다. 주권자들이 `더 이상 사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할 때까지 무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민심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송충원 서울지사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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