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미의 독립영화 읽기] 랑글루아 박물관 산책

프랑스의 영화 도서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초대관장인 앙리 랑글루아는 `영화에 미친 인물`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괴짜이자 전설적 인물이다. 그는 영화를 보러 가기 위해 대학 입학시험을 포기했고, 유명한 여배우의 촬영 당시 드레스를 얻고 싶어서 훔칠 생각까지 한, 영화 앞에서는 법도 도덕도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영화의 구세주이다. 전쟁 시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필름을 수집해서 자신의 목욕탕에 보관했고 상영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초기 영화의 일부는 랑글루아의 수집벽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보지 못할 뻔했다.

그는 필름을 보관하고 복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상영하는 것이라고 여겼고, 초기 그의 필름 컬렉션이 구축될 때부터 작은 사무실을 빌려서 하루에 3편을 상영했으며 이는 시네마테크의 기본 형태가 됐다. 그렇지만 그것은 늘 어떤 규칙이나 선택이 없는 `갑자기 상영작이 뒤바뀌기도 하는무질서하기` 짝이 없는 상영회였다. 시네마테크가 만들어지고 나서도 상영관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도중 복도에서 또 다른 영화를 상영하기도 하고, 할리우드 영화에 어떤 자막도 붙이지 않고 상영하기도 했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관장이었던 장 루슈가 랑글루아 박물관을 소개하는 `랑글루아 박물관 산책`은 앙리 랑글루아가 열정적으로 수집한 영화와 관련된 물건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77년의 화재로 본래 샤이오궁에 위치했던 랑글루아 박물관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기에 특별한 기록이다.

광학기계라고 통칭될 수 있는 매직 랜턴, 연속 사진, 조에트로프 등 우리의 시각적 착시를 이용해 운동을 이끌어 낸 다양한 기계들이 결국 영화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꺼내어 놓듯 박물관의 입구는 영화가 탄생하기 직전의 발명품들로 가득하다. 영화는 19세기 사람들의 꿈이었다. 지금에서야 영화의 탄생은 신화화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지만, 어쩌면 그는 영화가 어느 한 순간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닌, 당시 사람들의 열망에서 무심코 만들어진 부산물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또한, 랑글루아는 이 박물관을 구성하면서 어떤 전시물에도 설명하는 라벨을 붙이지 않도록 했다. 다만 모든 기계들, 사진들, 물건들이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냥 보여지기를 원했다. 장 루슈는 몇몇의 물건을 가리키며 `실패의 유언`이라고도 칭한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랑글루아 전기의 서문에서 "이 책에 `무질서와 천재`라는 부제를 붙여도 좋을 것 같다"라 밝혔듯, 그의 영화를 향한 열정 또는 천재성은 무질서에 기인한다. 오늘날 우리의 영화보는 방식은 아카데믹한 규칙에 따라 행해진다. 하지만 선택이라는 것은 늘 권력과도 맞닿아있다. 어떤 면에서 역사는 권력자의 이해에 따른 이데올로기의 연대기이다. 그렇기에 이 다큐멘터리는 상실된 장소에서 (유령의) 랑글루아가 수집한 모든 것을 조심스러우면서도 꼼꼼하게 살펴보며 우리가 영화와 맺을 수 있는 우정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독특하고 유의미하다.

장승미 대전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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