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도

박완서 외 11명 지음/책읽는 섬/224쪽/1만5000원

강가에서 일을 보는 사람 곁에서 그 강물로 태연히 몸을 씻고 이를 닦는 곳. 중앙선과 신호등도 없는 도로 위에서 각기 다른 속도의 교통수단들이 어지럽게 엇갈리는 곳. 그런데 신기하게도 교통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곳. 불과 몇 킬로미터 사이를 두고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곳. 그래서 문득 문명의 속도가 멈추고 마는 곳. 여행이 고행이 되고, 다시 순례가 되는 곳. 그곳이 바로 인도다.

`나의 인도`는 박완서, 법정, 신경림, 이해인 등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들이 생의 마지막 나들이 같았던 인도에서의 체험을 담은 여행기를 묶은 에세이집이다. 11명의 작가는 저마다 다른 시선으로 인도를 바라본다. 누군가는 인도 여인의 검은 눈동자로 기억하고(문인수), 어떤이는 릭샤의 페달을 밟던 소년의 종아리에 불거진 힘줄로(나희덕), 또 어떤 이는 버닝카트(갠지스강의 화장터)에서 타오르던 불꽃으로 떠올리며(동명), 마더 데레사와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손길을 통해 인도를 추억한다(이해인).

시인 나희덕은 각종 가축과 릭샤와 자동차와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서로 다른 속도로 내달리는 인도의 도로 위에서 불안함을 느낀다. 도심을 벗어난 대부분의 도로에는 차선도 없고 신호등도 없지만 한국에서라면 출·퇴근길에 일상적으로 접하던 교통사고를 한번도 목격하지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각종 교통체계와 안전장치 안에서 위험이 통제되고 관리되고 있다는 착각속의 은폐된 위험이 사실은 더 위험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도는 또 투박하고 거칠고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가르침을 준다. 달리던 기차가 들판 위에서 갑자기 멈추면, 교행해서 지나가던 기차도 멈춰선다. 그러면 느닷없이 두 기차 사이로 긴 골목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몰려나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장사꾼들은 물건을 판다. 시계에 삶을 맡겨버린 이들에게는 즉흥적인 사건이 당혹스럽겠지만 인도에서는 이것이 일상이다. 작가들은 그 뜻하지 않은 멈춤 표지 앞에서 먼 들판을 바라보고, 낯선 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뜻깊은 생의 한순간을 지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의 인도`에 담긴 14편의 에세이가 여느 여행 에세이와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낭만은 눈을 씻고 찾으려야 찾을 수 없다. 작품 속 풍경들은 가난하고, 더럽고 무질서하다. 그리고 아프다. 마주할 시간이 없어서 피하고 싶었던 어떤 것을 자꾸 건드린다. 바쁘고 각박하게 사는 것이 이 시대 미덕이라고 치부하며 감춰온 바로 그것이다.

이들에게 인도여행은 죽음과 소멸을 통해 새로운 삶을 맞이하는 시간이었다. 모든것이 정지한 듯한 공간 속에서 오롯이 멈추고 내려놓는 순간 "오랫동안 잊었던 또 하나의 내가 비로소 숨쉬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여행이었다. 작가들은 인도를 여행하면서 스스로 아파지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뒤 그 선택은 오롯이 14편의 글로 남았다.

원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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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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