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통해 `불수능`이라는 단어를 접했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예년과 달리 어려워 불수능이라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지 30년이 넘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어려웠다는 문제를 찾아봤다. 단지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이러는지?`라는 궁금증이 앞섰다.

뚫어져라 봤다. 모르겠다. 천천히 30분 이상 보았다. 그 시간 동안 딴 생각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게 종교의 수행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혼자 웃음 짓게 됐다.

다시 문제를 봤다. 보기 다섯 개 가운데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이중 하나가 답인 것 같다. 하지만 모르겠다. `이제 찍어야 하나`라는 아쉬움만이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냈을까?`라는 의문은 저녁 뉴스에서 풀렸다. 수능에서 분별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란다.

수능시험은 하나의 문제로 이해하는 학생과 이해 못하는 학생 혹은 과정은 몰라도 맞춘 학생과 맞추지 못한 학생으로 분별하는 것이었다. 마치 수많은 감자를 캐고 그 감자를 잘생긴 것과 못생긴 것으로 분별해 구분해 놓은 것처럼 말이다. 수능에는 그냥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우리는 실력대로 아니 학력대로 분별하는 기준만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준만을 맞추려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도 생겼다.

언젠가 수행처에서 감자를 삶아 함께 먹기로 했다. 이제 막 캐낸 감자는 그 동안 의지했던 흙을 지우지 못했다. 일단 씻어야 했다. 씻는 일은 내가 하기로 하고 누군가는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나는 큰 그릇에 물을 담아 감자를 넣었다. 그리고 깨끗이 씻고자 하나하나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매번 하던 일이 아니라 더디다는 사실은 나만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였다.

"정사님, 그냥 함께 씻어요. 잘 생긴 것 고르지 마시고 그 감자 함께 비비면 다 깨끗해져요."

한 보살님 눈에 감자 씻는 일이 만족스럽지 못해 보였나보다. 맛있고 잘생긴 감자를 골라 씻지 말고 그냥 함께 비비다 보면 다 깨끗해진다는 보살님의 말속에는 무분별의 가치가 있었다. 사실 어느 감자 하나 흙 속 양분을 받지 않은 것이 없다. 작고 못생긴 감자일지라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지금 빛을 보았을 것이다. 그냥 감자였다. 하지만 우리의 눈에는 잘생긴 감자와 못생긴 감자가 보인다. 크고 잘생긴 감자는 선별해 곱게 씻기도 한다. 그리고 못생긴 감자와는 다르다는 분별을 만들기도 했다.

크거나 작거나 넓적하거나 둥글거나 물속에서 함께 부딪히는 감자는 저마다 흙을 털어낸다. 부딪힘이라는 `함께하는 과정`을 거쳐 있는 그대로 깨끗하고 맛있는 감자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도 분별없이 그냥 함께하는 부딪힘의 과정으로 더 소중해지는 것은 아닐까?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분별하지 않는 지혜가 있다. 바로 무분별지(無分別智)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모든 것이 소중한 것이다. 맞거나 틀리다 혹은 좋거나 나쁘다 등으로 구분하지 않는 지혜가 무분별지다. 사실 사람마다 배우고 익혀 온 삶이 다르다. 그 삶은 저마다의 분별하는 기준을 만들었다. 이러한 기준은 서로 다르고 자신의 습관에 따라 치우치기 마련이다, 몸에 좋은 토마토라는 정보는 같다. 하지만 누군가는 어려서부터 먹지 않았기에 싫은 것이 되고 누군가는 자주 먹었기에 좋은 것이 된다. 서로의 삶이라는 습관이 다를 뿐이다. 누구라도 몸에 좋은 것을 먹지 않는다고 나쁘다거나 잘못됐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사회는 수능문제와 같아 보인다. 오직 분별을 위한 정답만이 있었다. 정답이 아닌 나머지 4개의 보기는 틀렸다고 가르친다. 저마다 다른 생각의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그 생각이 정답을 대신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답이 아니면 틀리다는 기준은 저마다의 삶을 정답에 맞추라는 우리 사회의 강요는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에 잠시 슬픔을 지우지 못했다.

추운 하루다. 생각 이전에 정답만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불수능을 우리 사회의 갈등과 질시 속에서 본다.

그리고 `수능과 같은 우리사회의 분별력이 개개인의 편견을 만들고 다시 그 편견이 더 깊은 분별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라는 무거운 생각에 중년의 책임을 드러내 본다.

부끄럽지만 오늘도 서로 다름 속에 부딪히는 삶을 이어가고자 마음의 문을 다시 연다.

원명 대전불교총연합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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