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조선 초의 천문학자인 충남 서산 출신인 류방택이 만 원짜리 뒷면에 새겨진 천상열차분야지도(조선시대 천문도)를 제작한 인물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보았다. 충남 서산에는 그의 이름을 딴 천문 기상과학관도 있어서 그의 역사적 업적을 기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광코스로도 연계하고 있다.

방송에서는 서산시가 주 촬영 무대였기 때문에 만 원권에 새겨진 천상열차분야지도만 언급했지만 만원 지폐 한 장에는 앞면에는 세종대왕, 뒷면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배경으로 혼천의가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천문관측기구인 혼천의를 통해 천상열차지도라는 조선시대 천문도를 관측했다는 의미가 만 원 짜리 뒷면에 담긴 역사이다.

우리는 돈을 너무 좋아하지만 그 한 장 마다 담긴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돈은 그저 주머니 속에 있다가 그냥 스쳐지나가듯 써버리거나 통장에 숫자로 쌓여있는 것으로 여길 뿐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는다. 누구에게든 중요한 것은 돈의 가치이지 화폐에 새겨진 의미까지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서산 출신 류방택이 천상열차분야지도 제작에 관여했다면 국보 230호 혼천의는 부여 출신 조선 중기과학자 이민철(1631-1725)이 만들었다.

혼천의는 천체의 운행을 재현한 일종의 천체 모형으로 별자리의 각도를 측정해서 천체를 관측하는 기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최초의 혼천의는 조선 전기 세종대왕 조에 장영실이 만들었다. 그것을 잘 사용했다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조선 후기 현종 조에 이민철과 송이영 이라는 과학자가 각각 새로 개조하여 만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민철이 만든 혼천의는 일제 강점기에 경희궁이 헐리면서 없어져버렸고 현재 남아있는 혼천의는 송이영이 만든 것이다.

우리는 갈릴레오, 뉴턴, 아이이슈타인 등의 서양 과학자들의 출신과 업적에 대해서는 익숙하지만 우리 전통 과학과 과학자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어릴 적 읽었던 위인전들의 인물들도 서양 사람들만 가득했었다. 우리 역사 교육의 한계이다.

왕권을 바탕으로 국가를 유지했던 우리나라의 왕조에서는 천문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임금이 백성과 신하들을 장악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왕권을 위협받던 왕들에게 천문을 읽어서 백성들에게 오늘날처럼 일기 예보를 해주는 일은 가장 안정적인 통치의 원리였을 것이다. 경주에 있는 첨성대를 보더라도 별자리를 관측해서 하늘의 기운을 읽는 일이 왕권 유지를 위한 절대적인 일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왕조에서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왕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을 때 가장 먼저 했던 일이 천체 관측 장비들을 정비하고 발명을 독려하는 일이었다. 조선 초기에 세종대왕에게 장영실이라는 영특한 과학자가 있었다면 조선 후기 현종에게는 이민철 등의 천재 과학자들이 있었다. 조선왕조 500년을 유지했던 근간 중에 한 가지는 임금들이 적극 후원했던 과학자들의 활발한 연구 활동이었다. 현종실록에 의하면 이민철은 혼천의 뿐 만아니라 수격식 선기옥형(해시계)과 수차 등을 만들었으며 그런 공로로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이민철의 활약으로 볼 때 조선 왕조에서 인문학적 업적만을 우대한 것으로 알려진 것은 그런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한 역사학자들의 편협한 사고일 것이다.

이민철은 효종 조에 영의정이었던 이경여(李敬輿:1588-1657)의 6남 3녀중 5남이다. 이민철의 가문은 조선 시대의 명문가이다. 조선시대 발명가이며 과학자였던 이민철에 대해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가 부여 출신이며 만원 짜리 뒷면에 선명하게 인쇄된 혼천의를 만든 조선 시대 과학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우리는 잘 모른다. 우리는 돈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지 돈에 인쇄된 내용까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자료를 찾고 그의 묘지까지 답사를 다녀오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그의 후손이거나 같은 고장 출신이라는 실낱같은 인연의 끈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다른 고장에 비해서 부여는 행복한 곳이다. 서산에서는 그곳 출신인 만 원권에 인쇄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제작한 인물의 이름을 딴 과학관까지 만들어 관광객들을 유치하려 애쓰고 있지만 부여는 백제의 유적과 유물만으로도 차고 넘치는 풍부한 컨텐츠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역사적 스토리텔링 계발에는 소홀한 것 같다.

오창경 해동백제영농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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