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순환장애와 어혈

기원전 2세기경 중국 한나라때 유적에서 발굴돼 `마왕퇴의서`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진 한의서에는 진맥, 경락, 침뜸 등 한의학 전반에 대한 기록들이 적혀있어 2000년 전 한의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옛 사람의 눈으로 당시의 한의학을 짐작해 보면, 생명은 뜨거운 것이었고 죽음은 차갑게 식어가는 것이었으므로 치료는 차가움을 없애는 것이어야 했다. 특히 다리가 싸늘하게 차가워지는 증상은 다양한 질병의 시작이었기 때문에 여러 방법으로 따뜻하게 했는데, 다리의 여러 곳에 뜸을 뜨기도 하고 침을 놓거나 날카로운 도구로 출혈을 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다리에서 여러 혈 자리를 발견했으며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한의 침 치료의 시작이다.

이를 현대의학이론으로 해석해보면 다른 동물들과 달리 직립 보행을 하는 인간은 두뇌, 심장 등 주요 혈관 시스템이 땅과 수직을 이룬다. 전신을 순환하는 5리터의 혈액은 중력에 의해 끊임없이 하지와 발등으로 향하고, 심장은 하체로 몰리는 혈액을 다시 복부와 가슴부위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펌프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혈액순환장애라는 필연적인 문제를 겪게 된다. 2000 년 전 옛 사람들은 하지의 순환장애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전신의 순환 기능을 회복하게 하는 방법을 발견했고, 이를 발전시켜 한의학을 완성한 것이다.

발목과 하체의 무력, 시림과 저림 등 각종 증상은 단지 심장의 박출력이 충분히 유지되는 유년기와 청년기에는 나타나지 않을 뿐이며, 심장의 힘이 서서히 떨어지는 40대 이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게 되는 현상이다.

혈액순환은 신체의 모든 부분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고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배출하는 시스템이다. 인체의 모든 세포는 혈액에 의해 생존할 수 있으며 혈액순환이 멈추거나 느려진다면 산소와 영양이 공급되지 못하고 노폐물이 쌓여 각각의 조직은 본래의 기능을 잃고 다양한 질병이 나타나게 된다. 원인을 막론하고 혈액순환장애로 인해 발생한 상황을 통칭해 한의학에서는 `어혈(瘀血)`, 곧 `죽은 피`라고 했는데 살아있는 몸에 죽은 피가 있을 수는 없다. 단지 영양과 산소공급이라는 혈액의 정상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기능이 사라진, 곧 기능이 죽은 피라고 직관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만성, 난치성 질환은 대부분 다양한 원인의 혈액순환장애로 인해 신체의 각 조직이 맑고 깨끗한 혈액을 공급받지 못해서 시작된다. 사람이 직립 보행을 하면서부터 혈액순환장애는 피할 수 없는 생물학적 환경이며, 인구 고령화로 인해 만성, 난치성 질환이 늘어만 가는 현재의 의료 환경에서 한의학이 찾은 혈액순환의 해답은 인류의 건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길호 아낌없이주는나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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