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 지난달 24일 오전 11시 경, 서울 KT 아현지사에서 벌어진 화재사고로 10시간 동안 16만 8000개 유선회선과 광케이블 220세트의 일부가 소실되었다. 이 사고는 중구와 용산구 등 서울의 5개 구와 경기도 고양시 일대에 예상을 뛰어넘는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KT와 연결된 이동통신, 유선전화, 초고속인터넷, IPTV 서비스 등에 장애가 발생하자, 휴대전화, 인터넷, 카드결제 서비스 등이 먹통이 되고, 식당, 상점, 배달앱 라이더 등은 물론, 병원진료와 경찰서 112 시스템에도 지장이 초래되었다. 주중에 이런 사고가 났더라면 그 피해는 훨씬 더 컸을 것이다.

이번 사고는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 단 한 차례의 화재로 국가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는 결정적 취약점을 보여줬다. 미국 퓨(Pew) 리서치센터가 작년에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한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연결된 사회`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률에서 단연 1위고, 소셜네트워크 이용률도 3위에 랭크되었다. 사람-사물-데이터의 모든 것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이런 모든 것들로부터 수집된 정보가 공유·활용되는 사회를 초연결사회라고 한다. 국내이동통신 3사(KT, SKT, LG유플러스)는 12월 1일을 기점으로 5G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5G시대의 키워드는 초고속-초연결-초저(超低)지연이다. 만일 5G 시대에 이런 화재가 발생했더라면 그 피해는 더욱 심각하였을 것이다.

KT 화재로 빚어진 `통신대란`과 `일상의 마비`는 전자전의 심각성을 보여줬다. 전문가들은 전자전의 핵심 무기인 EMP(Electro Magnetic Pulse, 전자기파)탄이 터지면 서울이 순식간에 `석기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경고한다. EMP탄 피해에 비하면 KT 화재의 피해는 약과라는 아니라는 뜻이다. 북한 EMP의 위험성은 6차 핵실험(2017년 9월)을 계기로 EMP탄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북한이 위협하면서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때 북한은 관영매체를 통해, "수소탄은 전략적 목적에 따라 고공에서 폭발시켜 광대한 지역에 대한 초강력 EMP 공격까지 가할 수 있는 다기능화된 열핵전투부"라고 주장했다.

EMP 공격은 핵 EMP와 비핵 EMP로 구분된다. 전자는 핵탄두를 30-100km 상공에서 폭발시켜 발생하는 충격파(전자기펄스)라는 강력한 에너지로 광대한 면적의 전자기기를 무력화시킨다. 후자는 비록 규모가 작지만, 핵 EMP에 버금가는 피해를 입힌다. 한마디로 EMP는 모든 전자기기를 태워버리는 위력을 발휘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100kt 핵폭탄(히로시마 원폭의 5배)이 수도권에 투하되면 EMP 효과로 서울-계룡대에 이르는 모든 전력망과 통신망이 마비된다. 국방연구원은 북한이 핵무기를 EMP탄으로 활용하여 동해 40-40km 상공에서 20kt 규모의 핵폭탄을 터뜨리면 인명살상이 없더라도 남한 전역의 전자장비가 무력화된다고 판단했다. 과학정책기술연구원도 군 통신과 레이더, 민간 정보통신 네트워크, 전력망, 인공위성 등이 북한의 핵 EMP 공격에 극히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미 국방부의 국방기술정보센터(DTIC)는 EMP탄을 가리켜 현대식 군대의 방어체계를 일거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로 분류하였다.

미 전략방위구상(SDI) 국장을 지낸 헨리 쿠퍼는 금년 6월 9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북한이 13-30발의 핵폭탄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하면서, 2004년 러시아의 "슈퍼 EMP 핵무기" 기술이 북한으로 이전되어, 북한이 불과 수년 내로 EMP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김정은 정권이 대륙간탄도탄(ICBM)에 비해 정확성 부담과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 핵미사일보다 핵 EMP탄을 더 선호할 개연성이 높다고 보았다.

북한의 노동신문은 작년 9월 4일, "핵무기의 EMP 위력"이란 기사에서 EMP의 효과를 상세히 소개했다. 이 신문은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에서 `수소탄`을 둘러본 소식을 전하면서, "전략적 목적에 따라 고공에서 폭발시켜 광대한 지역에 대한 초강력 EMP 공격까지 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도 작년 9월 15일 북한 미사일 발사 직후에 열린 NSC 회의를 주재하면서, "북한의 EMP 공격과 생·화학 위협 등 새로운 유형의 위협"에 대해서 철저한 대비태세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KT 화재사건은 한국 같은 초연결사회의 치명적 급소가 어딘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아마도 북한은 이 소동에 큰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가공할 EMP 위협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합참 등을 제외하고는 북한 EMP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남아 있다.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이 갈수록 요원해지는 가운데, 남·북화해 분위기에 휩쓸려 `설마`하는 기대감으로 이처럼 심각한 위협이 묻히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송승종 대전대 교수·미래군사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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