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수일 앞두고 전북의 한 고교에서는 1, 2학년 후배들이 수험생 선배들의 수능 고득점을 기원하는 대형 카드섹션 응원전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마침, 이 카드섹션을 지휘한 이 학교 관계자가 필자의 지인이어서 좋은 아이디어라고 전했더니 올해는 불수능(난이도가 너무 높아 어려운 수능)이어서 분위기가 안 좋다고 말했다. 수능에서 가능한 높은 점수를 얻고자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추운 날 운동장에 나와 카드섹션까지 펼쳤을까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애처롭다. 수능대박의 수험생이라면 더 없이 행복하고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리라. 하지만 수능대박도 이내 허망해지고 만다면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서울대 평의원회 연구팀이 서울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난 6-7월 `불안 및 우울 정도`에 대해 설문을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46.5%가 우울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격적이다. 수능대박이나 이에 가까운 고득점을 얻어 합격한 학생들의 절반이 우울증에 빠져있다니 납득이 안 간다. 머리가 비상한 이 학생들이 왜 이처럼 침울해하고 있을까. 더 깊이 사유하고 탐구하는 의지와 노력이 철학 비슷한 우울증으로 표출된 것일까. 학점 경쟁이 유난히 심한 곳이어서 그럴까. 서울대를 나와도 예전 같지 않은 `인생보장`이 아니어서 그럴까.

원인은 복합적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나라 교육과 대학, 사회의 구조가 대단히 뒤틀려있다는 점이다.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자료 하나를 더 보자. 지난 10월 국회 교육위원회 김현아(자유한국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2015-2017년 학생 정서·행동특성 검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검사에 응한 학생 189만 4723명 중 0.89%인 1만 6940명이 `자살위험군`으로 분류됐다. 2015년에 비해 3년새 자살위험군 학생이 2배 정도 늘었다. 가정과 학교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야 할 `관심군` 학생도 같은 기간 8만 2662명으로 40% 가량 증가했다.

교육에 대해 학자들은 다양한 정의를 내린다. 중요한 공통점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인간형성의 과정이라는 점이다. 인간의 가치를 높이려는 행위 내지 과정이라는 것이다. 교육이 이상적인 인간상 형성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흔히 말하는 지·덕·체의 조화로운 인간 교육은 기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성적지상주의, 엘리트 지상주의 교육이 교육의 기본을 깡그리 무시하고 외면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학생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워주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진 않는다. 하지만 그건 그것이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교육경쟁에서는 우선적으로 점수를 1점이라도 더 따야 하는 게 현실이다. 밤낮으로 학생들을 공부 속으로 몰아넣어야 하는 이유다. 이러니 아이들은 공부 스트레스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국제 구호 기관인 굿네이버스가 조사해 내놓은 자료(2016년)를 보면, 잠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초등 4학년이 15.4%였고, 초등 6학년은 20.8%, 중학 2학년은 39.3%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급증했다. 아이들이 상상력의 나래를 펴거나, 꿈을 생각할 시간을 갖기가 도통 어려운 실정이다. 학생들은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어서 꿈을 생각할 시간이 없고, 꿈이 잡히지 않으니 공부를 왜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요즘 유행하는 `멍 때리기`는 상상력을 키우는 데 보탬이 된다고 한다. 한데, 아이들은 잠시 짬을 내 친구들이랑 놀 시간마저 내기 힘들다. 꿈을 꿀 시간은커녕 상상의 여가마저 갖지 못하는 교육현실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한 블레즈 파스칼은 "상상력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직면한 4차 산업혁명시대에도 상상력이 최고의 무기이자 경쟁력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이 나라에는 상상력으로 생기발랄해야 할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잿빛 우울증에 빠져드는 형국이다. 이런데도 교육은 `백년대계`는커녕 `십년대계`조차 짜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러고도 `희망`과 `비전`을 얘기할 수 있나. 최문갑. 시사평론가·`밸런스토피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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