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역문화재단 설립을 추진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많아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16개 광역문화재단을 포함해서 대략 100개의 문화재단이 있고, 현재 많은 지자체에서 설립 준비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4년 제정된 지역문화진흥법에 의해 설립 근거를 갖게된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역문화재단의 역할과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 예술 영역에서 생산자와 공급자 중심의 예술이 아니라 주민들이 즐기고 참여하는 수요자 중심의 예술에 대한 욕구가 늘어나고 있으며, 노동 중심의 삶에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에 기초한 문화가 있는 삶에 대한 갈증도 한몫 하고 있다.

물론 지역문화재단 설립에 대한 오해와 편견 등도 존재한다. 지금까지 지역문화재단은 문화예술회관을 비롯한 공연장과 미술전시관, 문화센터 등의 시설을 위탁운영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그렇다 보니 문화재단이 만들어지더라도 새로운 변화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이 지역문화재단은 이중적 정체성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공공기관으로서 법령과 규정에 따른 행정 절차를 따르는 부분과 문화예술 영역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지원하는 유연함이라는 정체성의 측면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어느 쪽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역문화재단이 어떻게 일할 것인지의 해답은 지역문화재단이 대부분 기초자치단체 영역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모든 정책의 마지막 종착지인 현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한다는 의미이다. 정부나 광역 단위의 정책과 사업, 예산은 부서별, 분야별로 모두 나누어져 있다. 하지만 지역 현장에서는 교육과 문화, 도시재생, 사회적경제, 돌봄, 복지 등이 동시에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지역문화재단의 역할과 기능은 무엇일까. 문화재단이라는 이유로 `문화`와 `예술`만 사업 영역으로 설정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문화`와 `예술`을 매개로 할 수 있는 모든 삶의 영역을 망라하고 관통하는 것으로서 지역문화재단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예를 들어 도시재생 사업이 일어나면 문화재단과는 너무나 먼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SOC 투자나 문화적 도시재생 관점으로 들여다보게 되면 도시재생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역공동체의 삶이 단절되거나 파괴되지 않으면서 도시가 새로운 방식으로 디자인될 수 있고 공동체의 삶이 기록되거나 유지되거나 진화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지역문화재단의 역할과 기능이 공연장이나 전시관, 도서관 등 시설운영에만 머무르고 만다면, 아마도 인구절벽과 재정절벽의 시대에 조만간 한계에 도달하고 말 것이다. 이제 지역문화재단은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자원들을 발굴하고, 발견하고, 기록하고, 나아가 다양한 방식으로 고유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축적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에서 이미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주체들을 만나 연결하고, 공공과 민간을 넘어 다양한 공간들을 찾아내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아울러 그 공간의 연계와 활용을 통해 지역공동체가 함께 공유하고 서로의 삶을 경험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일은 무언가 새로운 길을 닦거나 만드는 일이 아니다. 기존의 골목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가보지 않은 골목을 걸어보고 경험하는 일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것은 굴착기를 장착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호미이다. 동네의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손에 호미를 하나씩 들고 땅을 파는 일이다. 누군가 고구마 줄기를 발견하면 그 줄기에 엮인 알맹이들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일이 가능하려면 지역문화재단 종사자들이 특별한 소명 의식을 가져야 하고, 그 만큼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경찰이나 군인, 소방관, 의사, 교사 등 사회적으로 특별한 직업을 갖는 이들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공공에서 일한다는 것이 `먹고사니즘`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최소한의 진전으로 향하는 걸음이다. 지역문화재단은 이 시대에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 양손에 호미를 들고 굴착기와 싸우는 명분과 자신감으로 무장할 때이다. 권경우(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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