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월 정부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국가 연구개발(R&D) 혁신방안`을 확정했다. 핵심은 R&D 도전성 확대와 연구여건 개선, 성과 체감형 R&D 시스템 구축이다. 그동안 공급자 중심 R&D 관리제도가 연구자 창의와 자율성을 방해하고, 사회문제도 해결 못하고 있고 연구과제중심시스템(PBS)은 출연연의 중장기 연구 및 기술축적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래서 정부는 R&D를 포함한 국가기술혁신체계(NIS) 큰 틀을 `사람과 사회` 중심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출연연 연구와 사업화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꿔 지속 성장가능한 혁신과 사회적 문제해결에 기여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한다. 이 계획의 핵심은 출연연의 연구과제중심제도(PBS:Project Base System)의 개선이다. 1996년 도입한 PBS는 연구과제가 중심이었다. 이 제도의 문제는 과제가 종료되면 연구원들이 다 각기 흩어져 버려 과제는 다 수행했는데도 문제가 해결이 안되고, 기술축적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기업의 기술이전 및 기술사업화 성과도 저조했다.

사람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다는게 무슨 뜻일까? 쉽게 말하자면 과거시스템은 연구과제에 사람과 예산이 배정됐다가 종료되면 사람이 빠져 나가는 시스템이고, 사람중심시스템(PBS:People Base System)은 사람인 연구자그룹에 과제와 예산을 배정해 과제가 종료 되더라도 연구성과가 그 그룹에 남아서 축적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이다.

해외 선진국들의 블록버스터급 기술사업화 성공사례를 보면, 기술사업화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커뮤니티 기반의 집단창작과정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진화를 지배하는 놀라운 힘으로 대변되는 크리스퍼-캐스9 이 핫 이슈다. 각종 생물의 지놈을 정밀하게 조준해서 편집할 수 있으며 비용도 놀랄만큼 저렴하다. 이 기술은 HIV와 암 등의 질병치료와 글로벌 식량부족문제 해결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런 크리스퍼-캐스9의 원조가 되는 1세대 생명공학기술인 `재조합 DNA 기술`의 사업화 이야기를 보면 그 시스템을 이해 할 수 있다.

흔히 우리는 특허권이 만료된 1997년까지 450여 개 기업이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이를 통해 2억5500만달러 이상 실시료 수익을 올린 유전자 재조합 기술의 사업화를 스탠리 코헨과 허버트 보이어 간의 협동 연구와 그 이후 허버트 보이어와 로버트 스완슨에 의한 제넨테크(Genetech)설립 등에 초점을 맞춰 알고 있다.

그러나 유전공학 기술사업화는 사실 소수 과학자와 벤처투자가에 의했다기보다는 스탠포드대학의 생화학과를 중심으로 모인 일련의 연구자 집단의 `커뮤니티`에 의한 일종의 `집단창작` 과정이였다. 유전자 재조합기술의 사업화는 DNA 복제효소의 발견자 아서 콘버그가 스탠포드대학의 생화학과를 `창시`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스탠포드대학에 학과장으로 임용되면서 매우 강력한 권한을 가졌는데,`자기 사람`을 생화학과에 심는 것 뿐만 아니라 스탠포드 생화학과를 일종의`커뮤니티 공동체`처럼 운영했다. 삼고초려를 통해 모셔온 핵심인력들, 장비와 시약의 자유로운 이용, 프로젝트의 공유, 심지어 각자 수주한 연구비를 모두 통괄하여 그룹 중심으로 운영하는 시스템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스탠포드 생화학과는 핵심연구자를 중심으로 연구그룹이 장기간 기술을 축적하고 함께 커뮤니티 안에서 학습하고 성장하는 집단창작과정에 의해 스탠퍼드대학을`DNA 연구의 메카`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과제성과물 위주의 사업화를 했다. 그러한 사업화방식에는 기술에 축적된 사람과 집단창작과정을 함께할 커뮤니티가 없었다. 이제 우리도 사람중심의 기술사업화로 패러다임 전환을 해보자. 국가R&D혁신방안을 계기로 커뮤니티에 기반해서 사람도 키우고 리더도 만들고 연구그룹의 조직력도 키우는 시스템으로 전환하자. 그런 창의적인 커뮤니티 그룹을 많이 만들자. 혁신방안이 과학자뿐 아니라 최종수혜자인 국민을 위한 시스템으로 작동되길 기대해 본다.

박은일 특구진흥재단 미래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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