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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야기] 삶과 추억의 저장 장치

2018-11-27기사 편집 2018-11-27 07: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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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성큼 다가온 이즈음 이면 대한민국 사람은 대부분 피해갈 수 없는 연례행사가 있다. 바로 김장 담그는 일이다. 아직도 김치는 한국인의 식탁에선 빼놓을 수 없는 필수 품목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민이 아파트 생활을 하는 만큼 김장 담그는 풍경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필자가 어렸을 적 풍경을 떠올려 보면 먼저 밭에서 뽑아온 배추를 우물가에서 씻고 다듬고 절인 후 물기를 빼고 마루에서 양념을 바른 후 마당에 묻은 김장독에 차곡차곡 쌓아 넣는 것 이었다. 지금의 풍경은 어떤가 자녀들이 김치냉장고 김치통을 들고 어머니 댁에 모여 거실에 둥그런 김장용 패드를 깔고 양념을 버무려 놓은 후 미리 택배로 주문 배달된 절임배추에 양념을 발라 각자 가져온 통을 채워가는 것이다. 거실과 주방, 앞 뒤 발코니 공간이 예전의 우물가, 마루, 마당의 역할을 해낸다. 시간이 흐르고 주거공간의 구조도 바뀌었지만 양념에 버무려진 배추김치의 모습과 맛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인 것 같다.

단독주택을 설계할 때 주방은 주변 공간과 아울러 주부들이 다른 공간에 비해 가장 민감하게 체크하고 설계에 직접 관여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주방의 적절한 크기와 가전기기의 배치, 작업동선, 수납공간, 식탁의 위치 등을 꼼꼼히 따져본다. 다용도실과 세탁실은 바로 옆에 배치해야 하고 외부 마당과 이어지는 부분에는 김장을 대비해 넓은 물 쓰는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주방과 주변공간을 얼마나 잘 설계했느냐는 건축주의 만족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형태는 모던한 건축물 이지만 여전히 장독대가 마당 한켠에 놓여지고 우물역할을 하는 외부수도와 부엌역할을 하는 주방, 광의 역할을 하는 다용도실은 주택구성의 필수 요소로 작용한다. 주방과 달리 기능적으로는 꼭 필요 없어졌어도 종종 요구 돼지는 공간도 있다. 사랑방도 그렇고 전원주택에서는 직접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데우는 온돌방도 말씀을 하신다. 사랑방에서의 여러 추억들과 뜨끈뜨끈한 온돌방의 온기를 기억하고 있는 세대가 아직 살아 있는 한 쉽게 없어지지 않을 한국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건축구성 요소들 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몇십년 뒤 그런 추억을 가진 세대가 모두 사라지면 어떤 것이 그런 요소들로 작용을 할지 궁금해진다. 인터넷이 전 세계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케 하고 한해에 몇 번씩 해외여행을 하는 요즘 어떤 지역적인 건축의 특징을 갖는다는 것이 큰 의미로 작용하지 않게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시대에 한국의 건축사들은 어디에 지향점을 두고 건축적 사고를 펼쳐 나가야 할지를 깊이 고민해 봐야 할 때다. 무한히 널려있는 온라인상의 실시간 건축동향을 흉내 내며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 본다. 동시대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그 삶과 함께하는 건축물은 어떤 형식을 취하고 사람들에게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킬지 항상 깊이 사고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후손들에게 떠올리고 싶게 될 좋은 추억의 장치들을 만들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한묵 대전시건축사회 부회장·건축사사무소 YEHA 대표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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