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수의 전통놀이 돋보기

아이들은 땅에다 커다란 원을 그린다. 그리고 손으로 큰 원 한 귀퉁이에 손가락을 펼친 크기만큼 원을 그려 내 집을 만들고 둥근 사금파리를 세 번 튕겨 내 집으로 들어오면 그은 선만큼 내 땅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따낸 내 땅이 많아야 이기는 이 놀이를 `땅따먹기`라고 한다. 땅따먹기는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건너온 일본의 대표놀이이다. 일본은 일본의 역사에서 땅따먹기를 그친 적이 없다. 처음에는 일본 내에서 서로 영주가 되기 위해 땅따먹기를 했는데 그들이 즐겨 쓰던 무기는 긴 칼과 작은 칼 두 자루였다. 이들을 `사무라이`라 불렀다.

섬나라 안에서 아웅다웅하던 그들은 이내 내륙을 넘보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땅따먹기가 임진왜란이다.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에게 명나라를 침략할 테니 길을 터 달라 했으나 이것은 조선을 점령하고 명나라 땅까지 차지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때 일본은 이순신 장군에게 대패하고 물러갔지만 그 근성은 `정한론`이라는 대를 이어 땅따먹기에 집착하면서 결국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땅따먹기의 절정에 이르게 된다.

1910년 우리는 일본에게 땅을 모두 빼앗겼다. 일본은 1941년 세계 2차 대전을 일으켜 미국의 진주만까지 손을 뻗었으나 미국의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지면서 비로소 일본의 땅따먹기는 중단됐다.

땅따먹기는 일본말로 구니토리, 지시메, 지토리, 진도리라 불렀다. 그런데 땅따먹기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떠돌았다.

`우리 조상은 땅에 대한 친숙함 그리고 더 넓은 토지를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을 나타냈다. 어린이들은 장차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될 땅에게 익숙해졌을 터이고 보다 넓은 토지를 소유한다는 것은 바로 풍요로운 삶과 직결된다하겠다. 즉, 땅을 넓힘으로써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알게 모르게 아이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생각들이 땅따먹기라는 놀이를 통해 한정된 토지를 독점하고 있는 지배계층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게 하고 나아가 더 넓은 삶의 터전을 쟁취하기 위한 민중들의 소망이 이 놀이에 담겨있다 하겠다.`

위의 글을 잘 분석하면 일본이 우리의 정서를 해치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은근히 소외계층에게 사회에 대한 불만을 야기하는 것은 일본이 우리에게 우리의 말과 글을 못 쓰게 하고 우리 문화를 폄하해 저속화하고 은근히 일본놀이로 일본화하려는 흑심을 읽을 수 있다.

우리는 900여회가 넘는 외침을 받았지만 남의 땅을 이유 없이 뺏으려고 침략한 적은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이는 우리 정서하고는 전혀 맞지 않는다.

일본학자 무라야마 지존이 1936-1941년 한국에 땅따먹기가 얼마나 퍼져있나 조사했다. 한국에서는 땅따먹기를 `꼭꼬락치기`, 제주에서는 `땅재먹기`, `뽐을땅`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는 `땅빼앗기`, `땅뺏기`라고 부른다고 썼다.

노는 방법도 다양하게 조사됐다. 땅재먹기는 가위, 바위, 보를 해 이긴 사람이 자신의 손을 땅에 뻗어 차지하는 방법이다.

경기도에서는 상대방의 말을 던져 맞히면 땅을 따먹는데 몇 번 만에 상대방의 말을 맞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 아이들에게 무력으로 땅을 빼앗으라는 이 놀이는 정서상에도 좋지 않은 일본놀이다.

임영수 연기향토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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