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다양한 직업군들은 산업혁명 이후 부단히 지속된 노동 분화의 산물이다. 서구 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직업은 생계의 수단을 넘어 천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1차 산업과 같은 생산직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교수, 의사, 법조인, 성직자와 같은 전문직의 경우 소명의식을 앞세워 자신들의 차별화된 신분과 권위를 유지하기도 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촉진한 자본주의의 도래와 함께 노동의 분업은 더욱 가속화됐고 결국 모든 직업은 평등하게 밥벌이의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됐다.

디지털 기술의 혁신에 기초한 4차 산업혁명은 우리의 생활세계와 산업의 풍경을 통째로 바꿔 놓을지 모른다. 앨빈 토플러, 기 소르망, 제레미 러프킨 등과 같은 지난 시대의 미래학자는 예언자와 같은 어조로 다가올 미래의 유망 직종을 전망했다. 이에 반해 이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직업에 대해 논하는 이론가들은 마치 중환자를 진단한 의사와 같이 가까운 장래에 살아남을 혹은 사라질 직업에 대해 냉정하게 처방한다. 빅데이터 분석가, 인공지능 전문가, 사물인터넷 기술자, 드론 조종사, 로봇 정비사, 정보보안 전문가 등의 유망 직업과 달리 투자분석가, 약사, 자동차정비공, 치과기공사, 회계사, 택배기사 등의 직업군에는 빨간 불이 켜진다.

지난 주말에 페미니즘과 동시대미술에 대해 한 여성학자와 행위주의 미술그룹 작가가 대담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그러나 두 시간여 진행된 토론 가운데 개인적으로 내게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현재 한국사회의 다양한 페미니즘과 결부된 현상이나 이슈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미래` 혹은 `지속가능한 성장` 등과 같은 개념 자체를 거부하거나 비웃는 그들의 태도였다.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다가올 미래의 사회를 위해 어떤 공동체의 삶과 질서를 설계해야 하나?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근본적 변화가 생길 것이다. 기술과 정보를 독점한 소수 집단과 그렇지 못한 나머지 부류로 고착화되는 심각한 양극화 현상이 우려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창의적인 직업만이 생존한다고 한다. 창의적이란 다름 아닌 한 개인이 보유한 지식과 경험을 어떻게 타인과 공유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미래에 대한 비관도 낙관도 아닌 진지한 성찰의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박만우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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