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다보스 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밥이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한 이후 전세계가 4차 산업혁명 기술 선점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 혁명을 주도하는 사례로는 2011년부터 시작된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일본의 `일본사회 5.0`, 중국의 `중국제조 2025`, 우리나라에는 I-Korea 4.0이 있다. 미국은 구글, 아마존 등 거대기업들이 웬만한 정부 보다 더 활발하게 주도하고 있다.

우리는 경제사회에서 대변혁을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이른바 `아재`들 중에는 "나도 모르는 새 언제 4차 산업혁명까지 왔냐?"라는 사람들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우리나라는 1차, 2차 산업혁명은 근처에도 못 가보고 3차 산업혁명의 후반부에 간신히 올라타 경제적 성공을 이뤘기 때문이다.

경제사회적인 면에서 4번의 산업혁명을 간단히 요약하면 1차 산업혁명은 18세기 말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생산방식이 기계화된 것, 2차 산업혁명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전기를 활용해 대량생산하는 산업화가 이뤄 진 것, 3차 산업혁명은 20세기 후반 컴퓨터를 활용해 정보화·자동화를 이룬 것을 뜻하며, 4차 산업혁명은 최첨단 기술의 융합을 통해 지능화를 이루는 것으로 정리된다.

필자는 인류 역사적 관점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예술 등 다방면에 큰 영향을 미친 1차 산업혁명에 관심이 많다. 우선 1차 산업혁명으로 노예 해방이 가능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노예 해방하면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영국의 윌버포스는 기득권 세력의 큰 반대를 무릎 쓰고 1807년 노예무역금지법을 통과시키고 1833년에 노예제를 폐지케 했다. 프랑스가 1848년, 포르투갈은 1858년, 네덜란드는 1863년, 러시아도 1863년에 농노를 해방시켰으니 미국이 가장 늦은 1865년에 노예제를 폐지한 셈이지만 남북전쟁이라는 큰 희생을 치르고 얻게 되어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의 대명사가 됐다.

우리는 뻔한 악을 보면 고치려고 하지만 관습, 국가적 이익, 경제성, 현실적 대체 방안 등의 커다란 장벽과 마주하게 되면 대부분 현실을 합리화 하거나 좌절하게 된다. 윌버포스나 링컨이 신앙적 이유나 인류애로 시작한 노예제 폐지 운동은 사실 1769년 와트의 증기기관이 특허를 받고, 1776년 상업용 증기기관이 돌아가고, 1784년엔 기계식 방직기가 운영되면서 노예의 근력을 대신할 수 있게 되면서 현실화 됐다고 본다.

여기서 필자는 1차 산업혁명이 과학적인 사고에 끼친 영향을 논하려 한다. 1차 산업혁명은 열에너지를 역학적 에너지로 성공적으로 변환시킴으로써 서로 다른 성격의 에너지 간에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 줬다. 역학적 에너지는 운동에너지, 위치에너지, 탄성에너지를 말한다. 열에너지를 역학적 에너지로 변환시킨 예로는 20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헤론이 고안한 증기의 힘으로 돌아가는 공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단지 신기한 현상으로 끝났었던 것 같다. 성공적인 증기기관이 출연하기 전에는 대부분의 역학적 에너지는 역학적 에너지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물레방아를 예로 들면 흐르는 시냇물의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는 물레바퀴를 돌리는 운동에너지로 변환되고 중심축이 회전하면서 누름대가 시소처럼 생긴 방아 몸체의 한 쪽 부분을 눌러 주어 반대편의 방아공이에게 위치에너지를 주고 방아공이는 떨어지면서 벼를 찧는 운동에너지로 옮아가는 원리다. 즉 여러 과정이 있지만 역학적 에너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가축을 쓰던 인간이 이 일을 대신하더라도 같은 범주다.

1차 산업혁명 이후로 성격이 다른 에너지 간의 이동은 상식화됐다. 발전용 증기터빈은 열에너지로부터 운동에너지를 얻어 최종적으로 전기에너지를 만들어 2차 산업혁명의 동력이 됐다. 이 전기에너지는 3차 산업혁명에서 컴퓨터의 전원이 되었고, 4차 산업혁명에서 로봇의 운동에너지로 사용되고 있다. 형만한 아우가 없다는 말이 산업혁명에서도 맞는 것 같다.

최준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기술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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