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지난 1일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죄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했다. 2004년에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유죄`라고 판단한 바 있지만, 대법원은 과거의 판단을 변경해, 양심적 병역거부는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의 실현이며 정당한 행위이기 때문에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문제는 헌법상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가 충돌하는 데서 기인한다. 헌법상 기본권과 헌법의무가 충돌할 경우에 어느 가치를 우선할 것인가는 법학자들 사이에 오래된 고민이었다. 먼저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기본권을 우선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6월 양심적 병역거부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하고, 그 권리 행사를 위한 대체복무제가 마련되지 않은 병역법 제5조를 헌법불합치 결정한 바 있다. 다만 처벌조항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을 했는데, 대체복무제가 입법되면 처벌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헌법재판소 결정과 대법원 판결 사이에는 내용상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법리적으로는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대법원은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할 수 없는 이유로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 민주주의의 정신`이라는 점을 들었다. "자유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지만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전제로 할 때에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국민 다수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인격적 존재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존재를 국가가 언제까지나 외면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 신념에 선뜻 동의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이제 이들을 관용하고 포용할 수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 판결에서 이제 우리 사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로 대변되는 소수자들의 양심과 가치를 인정한 점은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대법원 판결은 다수자들의 합의를 우선시 해왔고, 이를 전제로 한 헌법과 법률은 반드시 지켜야 할 사회의 규범이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그런 면에서 이와 배치되는 소수자들의 주장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은 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사회가 양심을 지키기 위해 형사처벌까지 감수하고 있는 이들을 외면할 수 없고, 국가가 이들을 포용해야 한다는 중요한 지침을 주었다. 결국 우리 사회는 소수자들을 포용하고 이들과의 공존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국방부를 중심으로 준비되고 있는 정부의 대체복무제안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 아닌, 사실상 또 다른 처벌을 계속하겠다는 `징벌적 대체복무제`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대체로 내용은 현역 육군 복무기간 기준 2배인 3년의 복무기간, 복무 영역은 교정시설에서 합숙 복무로 단일화, 심사기구는 국방부에 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안은 국내 일부 여론을 의식한 면이 있지 않은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런데 현역 복무 기준 1.5배를 넘는 대체복무는 징벌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국제사회의 합의가 있으며,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1.5배 이상의 대체복무 기간은 인권침해라고 오래전부터 권고해왔다. 국방부 산하에 심사기구를 설치하는 것은 심사의 공정성과 독립성 확보의 측면에서 비판이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심사는 `독립적이고 공평한 의사결정기관`, 민간의 권한이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사법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면 안 되고, 이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행정부는 이러한 사법부의 의지를 존중해야 한다. 그렇다면 행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대체복무안은 처벌의 관점이 아니라, 포용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만약 징벌적 성격의 대체복무제가 도입된다면, 이는 사법부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며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가장 합리적인 것은 유엔 인권이사회와 국가인권위원회의 의사를 존중하고, 다른 나라의 사례도 참작해 결정하는 것이다. 소수자를 포용하라는 사법부의 이지를 살리고 일부 비판적인 국내 여론의 감수하는 현명한 대체복무안을 만드는 것은 이제 우리 사회와 행정부의 몫이다. 문재인 정부는 `차별받지 않는 나라, 함께 잘 사는 나라`를 구현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기조는 이제 양심적 병역거부자 등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에게 특히 강조되어야 할 가치임을 기억하자. 이영선 법무법인 세종로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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