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도의회 시·군 행정감사 놓고 연일 시끌

2017년 6월 16일 충남도의회 청사 앞 광장에서 삭발식이 있었다. 사뭇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당시 이문행 전국공무원노조 세종·충남지역본부장과 백영광 사무처장은 형형색색 피켓을 든 시위 참가자들 앞에서 굳은 표정으로 머리를 자른 후 붉은색 머리띠를 동여매고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이날은 도의회가 `행정사무감사 및 조사에 관한 조례안 일부개정안`을 최종 의결하는 날이었다. 이들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처사라며 반대를 외쳤다.

1년이 훌쩍 지난 11월 5일 이들이 또다시 충남도의회 청사 앞에 모였다. 올해 새로 구성된 11대 의회에서 `2018년 행정사무감사 계획 승인의 건`을 의결하고 시·군 행정감사를 강행하려 하자 이에 반기를 든 것이다. 충남도의회 시·군 행정사무감사 폐지 공동대책위원회는 대규모 결의대회를 갖고 회의장 입구에서 자치분권 강화를 외치며 피케팅 시위를 벌였지만 다행히 이날은 삭발식이나 몸싸움 등 돌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충남도의회 시·군 행정감사를 놓고 연일 시끄럽다. 도의회는 지난 1995년부터 2013년까지 시·군 행정감사를 해오다 2014년 10대 의회 때 `감사나 조사의 대상 기관에 지방자치단체에 위임·위탁된 사무는 제외한다`고 규정한 지방자치법 시행령 제42조에 따라 스스로 중단했다. 하지만 지난해 갑자기 법제처 등 유권해석을 들어 시·군 행정감사 재추진 의지를 밝히면서 갈등의 불씨를 지폈다.

도의회는 시장·군수가 도의 위임사무와 막대한 예산을 집행하면서 권한을 남용하고 있지 않은지, 예산이 적정한 곳에 사용되고 있는지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꼼꼼히 살피겠다고 주장하는 반면 공대위 측은 현재 자체 감사, 시·군의회 행정감사, 충남도 종합감사, 감사원 감사, 정부합동 감사 등 지나친 중복 감사로 행정력 낭비와 업무 공백을 야기하는 상황에서 도의회 감사는 자신들의 권한과 영향력 강화의 목적일 뿐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급기야 감사 대상인 부여, 천안, 보령, 서산 등 4개 시·군은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감사장 설치를 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우려는 곧바로 현실이 됐다. 도의회 농업경제환경위원회 의원들은 지난 12일 시·군 행정감사 첫 대상인 부여군청을 방문했으나 공무원 노조의 제지로 청사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13일 천안시청을 방문한 문화복지위원회 의원들도 현관에서 문전박대 당했다. 심지어 천안시는 시의회 임시회 현장 방문을 이유로 시장을 비롯한 5급 이상 간부 공무원들이 청사를 비워 버렸다. 14일에는 행정자치위원회 의원들이 보령시청 정문에서 노조에 막혀 45분 만에 돌아섰다. 짐작컨대 16일로 예정된 안전건설해양소방위원회의 서산시 행정감사도 이와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게 뻔하다.

자존심을 구긴(?) 도의회도 순순히 물러설 기미가 없다. 도의회는 서류 미제출, 불출석 등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고 직무 태만과 공무집행 방해로 법에 따라 엄중히 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또 `2018년 행정사무감사 요구사항 변경의 건`을 의결, 오는 19일 각 상임위별로 도의회 회의실에서 다시 감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지켜보는 도민들은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 상대방 입장은 무시한 채 본인들 주장만 내세우는 꼴은 볼썽사납기 그지없다. 법에 규정한 사무를 집행하려는 도의원들에게 물리력을 동원해 막아서는 공무원 노조의 행동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도의회도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일선 시·군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이제는 머리를 맞대고 무엇이 진정한 지방자치 강화를 위한 길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다. 그것이 220만 도민을 위해 일하는 진정한 자세이다.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과 갈등은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뿐이다. 솔로몬의 지혜라도 빌려와야 할 판이다.

송원섭 충남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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