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중반의 공상과학 소설들 그리고 그것을 모태로 한 20세기 중후반의 SF 영화들을 생각해 보면, 그들의 상상은 단지 공상이 아닌 예언이었던 것만 같습니다. 그들이 제시한 미래가 지금의 과학과 문화의 흐름에 방향을 제시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 소송에서 영화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한 장면을 증거로 제출해 화제가 됐던 일례를 보면서도 결국 누군가의 상상이 알게 모르게 미래의 설계도가 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바라보면 무엇을 상상하든 과학은 그 이상을 보여주려는 것 같이 그 발전과 변화의 속도가 놀랍습니다. 그 속도가 우리에게 희망과 함께 두려움과 우려를 주기에 충분할 만큼의 속도입니다.

1968년도 필립 K 딕은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통해 복제인간의 존엄에 대한 질문을 통해 인간과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이후 다양한 SF작품의 미래도시 원형을 제시하게 된 리들리스콧의 `블레이드 러너`로 재탄생했지만 상업적 실패와 더불어 뒤늦은 작품에 대한 평가를 얻으며 불운의 명작으로 불리게 되고 2차, 3차의 감독판이 출시되는 희귀기록도 남기게 됩니다. 또한 35년이나 지나 만들어진 연작 `블레이드 러너 2049`는 같은 주제의 변주를 보여주고 있지만 시대의 흐름은 그 주제를 더욱 강렬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인간 유전체 지도를 완성한 유전학자 J.크레이그 벤터는 그의 저서 `인공생명의 탄생`에서 그간 자신이 해 온 연구의 흐름과 그의 합성 DNA를 숙주세포를 통해 실제 생명체로 만들어 낸 최초의 합성생명 연구의 성공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멀지 않은 미래에 합성된 DNA로 모든 형태의 생명을 창조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에 대해 자신 있게 예측하고 있습니다.

유전체 데이터로 생명 대사 작용이 이뤄지는 작동원리와 세포 주기에 대한 조절의 원리를 파악해내고 있는 과학, 그리고 그 원리를 바탕으로 새로운 유전체를 합성하고 조립해 합성유전체로만 제어되는 새로운 세포를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과학을 통한 생명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통제, 즉 생로병사에 관한 모든 가능한 계획과 통제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의 영역으로의 확장이면서 동시에 영원한 인간의 한계의 극복인 것입니다.

`호모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던진 질문이 생각납니다. 지금까지 시간과 공간을 막론하고 존재한 모든 인간에게 부여되었던 단 하나의 평등, 곧 죽음이 더 이상 운명이 아닌 선택의 문제가 됐을 때 인간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물음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통제되기 위한 사회적 합의, 의식 등이 과학의 발전 속도와 함께 발을 맞출 수 있을까요?

지난 2-3년 간 러시아의 전신마비 환자와 중국의 희귀병 환자의 머리 이식 수술이 준비되고 있다는 기사가 종종 실리곤 했습니다. 중국의 장기 이식 시장에 대한 윤리성 문제 제기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생명이 달린 선택 앞에서 인간이 과연 윤리적, 이타적 선택과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블레이드 러너는 불법 체류 중인 복제인간 레플리컨트를 처치하는 직업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블레이드 러너인 K는 숨어 살고 있던 불법 리플리컨트를 제거하면서 "동족을 죽이는 기분이 어떤가?"라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2049년을 살고 있는 블레이드 러너 K는 자신 또한 최신 모델의 리플리컨트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K는 우연히 오래전에 죽은 여자 리플리컨트의 유골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유골은 출산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출산은 아직까지 재생산의 기능을 갖추지 못한 복제인간에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K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그 출산이 있었던 날짜 때문입니다. 그것은 K의 어린 시절의 기억 속 목각인형에 새겨진 날짜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리플리컨트는 성인의 몸으로 제조 된 후 어린 시절의 기억을 만들어 주입 된 것이기는 하지만 K는 이 우연의 일치가 마음에 걸립니다.

단서를 따라가는 K는 자신이 바로 유골이 출산한 기적의 아이라고 믿게 됩니다. 상관으로 부터 그 아이를 찾아 제거하라는 지시를 받은 K는 인간이 상관에게 묻습니다. "태어난 리플리컨트는 영혼이 있지 않습니까? 태어난 당신들에게는 영혼이 있잖아요?"라고 말입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다양한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복제인간 리플리컨트는 인간과 같은 육체와 사고력 그리고 기억까지 갖고 있지만 아기로 태어난 인간들과는 달리 자신들은 영혼을 갖지 못했다고 규정됐던 것입니다. 사전을 찾으면 영혼이란 `육체에 깃들어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한다고 여겨지는 비물질적 실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과연 인간의 생명과 호흡, 기억과 감정, 사고와 행동 그리고 존재. 그 사이 어디에 인간의 영혼이라고 불리우는 것이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요?

지금의 과학은 블레이드러너의 복제인간 리플리컨트도 더 이상 공상의 일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결국 생명의 존엄을 외면하게 할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 `블레이드 러너 2049`입니다. 이현진 극동대학교 미디어영상제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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