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점은 <주역>으로 해석하는데, 그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의리역(義理易)과 상수역(象數易)으로 구별한다. 의리역은 주역의 점사(占辭)를 기준으로 하고, 상수역은 본괘(本卦)와 지괘(之卦)의 괘상(卦象)을 중시한다. 조선시대에 퇴계 이황 선생에 얽힌 점사 이야기가 있다. 퇴계 이선생이 노환으로 눕게되자, 제자인 조월천이 점을 쳤는데, 지산겸(地山謙)이라는 괘가 나왔다. 월천은 겸(謙)괘의 괘사인 `군자유종`(君子有終)을 보고는 모든 동문들에게 `선생님이 위급하다`는 연락을 하여, 퇴계선생의 제자들이 황급히 모였다. 제자들이 와서 보니 선생님이 여전하므로, 월천에게 왜 불렀는지 물었다. 월천이 대답하기를 "우리나라에서 군자를 찾으면 선생님이 첫째인데, 점사가 `군자는 끝이 있다`고 하니 연락을 할 수 밖에 없지요"라고 했다. 겸괘의 군자유종이란 뜻은 원래 `겸손한 군자는 매사에 조심하므로 끝내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것인데, 월천이 글자대로 `군자는 끝이 있다`라고 새긴 것이다. 점괘대로 며칠 후 퇴계 선생은 별세하셨다. 이 점례는 점사를 기준한 것이니, 의리역으로 해석한 경우이다.

중국의 점례에 지천태(地天泰)괘에 얽힌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부친이 병환중인 것을 염려한 아들이 점집에 가서 아버지의 환후를 묻는 괘를 점쳐서 지천태괘가 나왔다. 태(泰)는 음양이 소통하여 편안하다는 뜻이므로, 도사는 "부친의 병은 곧 완쾌할 것이다"라고 판단을 했고, 아들은 안심하고 돌아가는데, 길에서 주역의 대가를 만났다. 그래서 점친 이야기를 했더니, 그 주역선생이 뜻밖의 소리를 한다. "지천태괘는 천(天)이라는 아버지의 위에 지(地)라는 흙이 있으니, 곧 아버지를 땅 속에 장사지낸다는 뜻이다.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실제로 며칠 뒤에 상을 당했다고 한다. 이 태(泰)괘의 해석에서, 전자는 의리(義理)로 보았고, 후자는 상수(象數)로 풀이했던 것이다. 공자의 <설괘전>에 보면 가족관계에서, 건(乾)은 아버지에 해당하고, 곤(坤)은 어머니에 해당한다. 또 주위환경으로 보면 건(乾)은 하늘이고, 곤(坤)은 땅이다. 지천태에서 상괘인 곤(坤)은 주위환경의 땅에 배대하고, 하괘인 건(乾)은 가족관계의 아버지에 배대한 것은 상수로 해석한 점례이다. 그렇다고 지천태괘가 나오면 `부친이 사망한다`고 일률적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부친이 건강을 회복한다`고 판단할 경우도 있다는 것은 경험상 당연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역점을 쳐서 지천태가 나오면, 과연 어느 해석을 따라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육효점으로 가부를 판단하거나, 매화역수를 참조하기도 한다. 즉 오행점을 활용하여 도움을 얻는다. 매화역수는 팔괘에다 오행을 직접 배당하여 그 상생상극으로 길흉을 정하는 점법인데, 육효점은 육효에다 십이지를 배당하여 그 오행의 생극으로 본다. 주역은 원래 음양점인데, 한(漢)나라에 들어와서 거기에다 오행이론을 간단하게 가미하여 널리 활용하였다. 주역을 고리타분한 도덕책 정도로 알고 있는 오늘날은 역점이라고 하면 오행으로 점치는 육효점이나 매화역수로 알고 있다. <주역>으로 점치는 역점이 사라져 가고 있다. 유교는 쇠퇴하였고 주역을 공부하는 사람도 드물어서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 역점이라는 단어가 없어지고, 육효점만 남을 것으로 보인다. 길흉을 점치는 전통적인 역점에는 지성(至誠)이란 것이 필수적인데, 이런 개념은 구시대 유물로 여겨지고 있으니, 간단한 오행점만 범람할 수밖에 없다.

요즘 유행하는 서양의 타로카드가 역점의 지위를 차차 대체하여 가고 있는 것 같다. 시대가 바뀌면 생각도 변하게 마련이니, <주역>으로 장래를 예측하는 방법은 인기를 잃은 지가 오래다. 그러나 3000년을 이어온 <주역>의 생명은 그 백발백중의 적중률에 있으니, 그 가치를 아는 이들은 역점의 퇴장을 아쉬워한다.

황정원(한국해양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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