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의 삶과 시대

앨런 그린스펀의 삶과 시대
앨런 그린스펀의 삶과 시대
세바스찬 말라비 지음/박홍경 옮김/다산출판사/632쪽/2만9000원

1986년 1월 23일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들이 백악관 웨스트 윙의 루스벨트 룸에서 비밀 회의를 열었다. 두 시간 가량 열띤 토론이 이어졌을까, 문이 열리더니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들어왔다. 대통령의 관심사는 오로지 하나, 바로 물가 안정이었다. 물가상승률은 연 4% 수준으로 1980년대 초 15% 비하면 상당히 안정됐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레이건은 화폐를 찍어내는 관료들의 본능을 억제해서 인플레이션의 과잉을 피하는 편이 낫다고 봤지만 밀턴 프리드먼 시카고 대학 교수는 "명목화폐를 다스려야지 실물 화폐로 돌아가는 방안은 생각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때 차분한 어투로 누군가가 물었다. "상품본위제도는 어떻습니까?" 목소리의 주인공은 앨런 그린스펀이었다. 그는 저명한 대학 교수도, 민간 분야의 거물도 아니었다. 그저 뉴욕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컨설팅 회사를 운영할 뿐이었다. 하지만 리처드 닉슨 이후 모든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그의 조언을 높이 샀다는 이유로 이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는 연방 예산, 철강 생산량, 금융 달인으로 통했다.

레이건은 금본위제(통화의 가치를 금의 가치에 연계(連繫)시키는 화폐제도)와 관련한 그린스펀의 발언에 반색했다. 레이건은 "과거에는 정장 한벌을 50달러면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돈으로 세탁도 어렵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그러자 그린스펀은 "연방정부의 문제는 돈을 찍어낼 수 있다는 점"이라면서 "명목화폐를 마구 찍어내는 중앙은행(연준)이 존재하는 한 정치인들은 늘 한도를 초과해 지출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즉 부채가 발생하더라도 화폐를 발행하는 기계를 돌리면 그만이라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레이건의 비밀회의가 열린 지 1년 반 후인 1987년 8월 11일 그린스펀은 연준 의장에 취임했다. 이후 18년 반 동안 그는 과거에 자신이 배격했던 아이디어, 즉 화폐를 발행하는 중앙은행의 재량적 판단으로 경제를 안정시켰다. 그 일을 성공적으로 해낸 덕에 그는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그의 성공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를 비판했던 개인사를 고려하면 무척 놀랄일이다. 2006년 퇴임할 때는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저자는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완전히 빗나갔다고 주장한다. 금융위기가 벌어진 비이성적인 시장에 존재하는 리스크에 대해 누구보다 제대로 알고 있었음에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을 지적한다.

세바스찬 말라비는 "그린스펀과 그 시대를 이끈 지도자들은 금융회사의 왜곡된 인센티브를 경계하지 않았고, 버블과 레버리지에 안이하게 접근했다"며 "미래 세대에게 뛰어난 선진들이 길을 잃고 만 사정과 이유를 알려주는 것 역시 역사학자의 임무이며, 앨런 그린스펀의 일생은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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