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기술발전의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고 말을 하는데 요즘은 정말 실감이 난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와 같은 용어가 등장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이 기술들은 제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며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역사적 바둑대결 때는 흥미롭게 지켜보던 마음이 대국이 거듭될수록 인공지능에 대한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미래학자들은 제4차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현재의 많은 직업이 없어지고 완전히 새로운 직업이 나타날 것이며 우리의 생활과 산업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우리 인류는 역사상 전례가 없는 가장 큰 변혁의 시기 앞에 놓여 있다.

전통적으로 박물관은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장소였다. 박물관의 한 형태에서 발전한 과학관도 과학기술의 발전과정과 기초과학의 원리 중심으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디지털기술, 로봇, 우주에 관한 전시도 현재의 최첨단 기술이라는 점에서 아직 미래로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전 세계의 과학관들은 미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2018년 북미과학관협회컨퍼런스에서는 `재창조(Reinvention)`라는 주제로, 유럽과학관컨퍼런스에서는 `창조적 충돌(Creative Collisions)`을 주제로 과학관이 현재 직면한 급격한 변화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4차 산업혁명시대 과학관의 역할과 비전`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11월 8일부터 9일까지 국립중앙과학관에 15개국에서 700명의 과학관 전문가들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발표된 의미 있는 이야기를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호주 퀘스타콘의 부회장이며 과학 전시에 40년의 경력을 보유한 스튜어트 콜하겐(Stuart Kohlhagen)은 지식의 저장소를 채우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13개월마다 지식의 총량이 두 배로 증가하는 시대에 과학관은 다양한 비형식적 교육을 통해 지식 전달이 아니라 미래를 살아갈 필수적 태도를 기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이 전시는 ~에 관한 것이다`에서 벗어나 `이 전시품에서 ~을 발견하면 성공적일 것이다`라는 논리에 기반 한 전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폐관 직전의 박물관을 지역사회와의 소통과 상호이해로 혁신을 만들어낸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 예술역사박물관의 니나 사이먼(Nina Simon)은 박물관계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급격한 사회의 변화로 박물관이 낙후되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박물관과 지역커뮤니티의 방문자들이 소통하면서 같이 만들어 가는 참여적 박물관이 중요한 성공모델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그동안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모두의/모두에 의한/모두를 위한(OF/BY/FOR ALL)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3D 프린터로 건설되고 총 사업비로 5억달러가 투입되면서 국내 언론을 통해서도 소개된 바 있는 두바이의 미래박물관을 기획한 노아 래포드(Noah Raford)는 과학관이 가장 빠른 신기술을 대중에게 소개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신기술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새로운 변화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신기술 전시의 교체 주기를 1년 이내로 보고 모든 자원과 역량을 모으고 있다고 해서 많은 참석자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국립중앙과학관도 미래 과학기술과 대중을 연결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12월 말에 개관할 미래기술관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가상현실 등 단순한 과학기술의 나열이 아니라 과학기술이 만들 새로운 미래의 구체적 모습을 전시할 것이다.

우리에게 다가온 변화는 거스를 수도 늦출 수도 없는 것이다. 19세기 초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줄이는 것을 두려워하여 일어난 대규모 기계파괴운동은 과거로 역주행 하려 했던 인간의 어리석은 역사로 이야기 된다. 과학관은 제4차 산업혁명시대 우리가 가진 막연한 두려움을 줄이고, 미래 우리의 모습을 당당히 그려나갈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배태민 국립중앙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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