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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이야기] 과장과 오해

2018-11-08기사 편집 2018-11-08 07: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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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할머니 따라 절에 간 적이 있었는데 할머니는 대웅전에서 절을 하고 나오시면서 "얘야, 이 기둥은 싸리나무로 만들었단다"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 말씀에는 무언가 신비로운 분위기가 묻어났다. 나는 당시 싸리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몰랐지만 단지 할머니 말씀 분위기로 미루어 '대단한 나무인 모양'이라고 속으로 여겼다. 그 후로도 옛 절집 기둥이 싸리나무라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몇 번 더 들었다.

몇 해 전 어떤 나무 전문가가 전국 유명 사찰의 옛 건물 기둥을 조사해 내 어릴 적 환상을 깨고 말았다. 그도 '싸리나무 기둥 이야기'를 어린 시절부터 들었고 그 궁금증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현미경을 동원한 과학적인 조사 결과 대부분의 오래된 절집 기둥은 느티나무이거나 소나무였다. 예상대로 싸리나무는 없었다. 관목에 속하는 싸리나무는 애당초 기둥감이 될 만큼 굵을 수 없다. 아무리 자라도 어른 손가락 굵기 정도가 싸리나무의 한계라는 것이다.

옛사람들도 싸리나무가 굵게 자랄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을 것이다. 싸리울, 싸리비 등 일상생활에 쓰임새가 많아 옛사람들에게 친숙했던 싸리나무여서 아름드리 기둥이 싸리나무라면 이야깃거리가 된다. 불가능한 것이, 그것도 경외의 대상인 부처님을 모신 절집과 관련된 것이니 더더욱 신비로울 뿐이다.

한옥도 곧잘 과장의 대상이 된다. '못을 하나도 치지 않고 짜맞추어 짓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목구조'라는 자랑이다. 사실 큰 목재를 이용해 결합부에 홈을 파고 촉을 내 짜맞추어 집을 짓는 기법은 전통사회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사용되었다. 다만 짜맞춤 방법이 나라마다 차이가 있을 뿐이다.

큰 목재로 집을 지으려면 짜맞출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 굵은 목재를 못으로 결합하면 각 부재의 중심축이 크게 어긋나 부재간 힘이 효율적으로 전달되기 어렵다. 짜맞춘다고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지 요즘 목구조에 비해 적게 사용했을 뿐이다. 옛집을 해체하다 보면 못을 비롯해 적지 않은 철물이 나온다. 특히 궁궐이나 절집 등 경제적인 면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건축물에는 제법 많은 철물이 쓰였다. 외부에서 보이는 철물은 주로 장식적인 역할을, 내부에 숨겨진 철물은 이음부 구조를 보강하는 기능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철광석에 목탄으로 고열을 가해 철을 뽑는 전통적인 제철법은 매우 비싸 당시에는 못을 함부로 쓸 수 없었다. 못이 일반화 된 것은 코크스를 이용한 혁신적인 제철법이 발명되어 못 값이 거의 백 분의 일 수준으로 떨어진 이후다. 여기에 더하여 목재를 쉽게 켤 수 있는 제재기계가 발명되면서 각재에 못을 박아 집을 짓는 것이 가능해졌다.

또 하나는 목재의 갈램에 대한 오해와 과장이다. 옛날에는 목재를 오랫동안 건조시켜 사용했기 때문에 옛집에는 갈램이 없었거나 있더라도 요즘에 비해 아주 적었다는 주장이다. 요즘 문화재를 복원하거나 수리하고 나면 기둥이나 보 등에서 어김없이 보이는 갈램은 덜 건조한 목재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영건의궤나 조선왕조실록 등 옛 기록을 통해 목재의 벌채 년도와 계절 그리고 그 목재가 사용된 집의 착공 년도를 알 수 있다. 또한 목재의 나이테를 이용한 과학적인 방법으로 목재의 벌채 시기를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궁궐을 비롯한 중요한 건축물을 짓기 직전 겨울에 쓸 나무를 베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왜 이런 과장과 오해가 생기는 것일까? 이야기를 하다 보면 듣는 사람의 흥미를 유발하고 싶은 욕심이 발동해 자칫 부풀리기 쉽다. 또한 우리가 옛것에 대해 가지는 약간의 경외감이 과장을 정당화시키는 것 같기도 하다. 최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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