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우리 몸 안의 피와 같다. 피는 몸 안 곳곳을 돌면서 산소와 영양분을 운반한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모세혈관일지라도 피를 통해 산소와 영양분은 공급된다. 눈에 띄는 기능이 없는 기관일지라도 산소와 영양분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공급된다. 피를 통해 공급되는 산소와 영양분으로 사람은 성장하고 발달한다. 혈액 공급이 중단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찰라의 순간이라도 혈액공급이 중단되면 우리는 되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우리 몸속에 흐르는 피처럼 돈은 사회 곳곳을 끊임없이 흐르고 돌아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움직일 수 있다. 주거분야도 마찬가지다. 거처마련을 위해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은 공급되어야 한다.

금융의 기본적인 역할은 돈이 여유있는 곳과 돈이 필요한 곳 사이를 중개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주거분야에 있어 금융은 주택을 구입하거나 전월셋집을 구하는데 필요한 보증금이나 월차임, 주택 개보수 자금등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중개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지금까지 주택금융의 중개기능은 주로 은행에서 담당해 왔다. 이들 기관은 리스크, 건전성, 수익성 관점에서 신용등급이 높은 사람을 대상으로 금융을 공급한다. 신용등급이 낮거나 고정적인 소득증빙이 어려운 고령가구나 자영업자는 금융지원에 제약이 있다. 특히 채무불이행 리스크가 높은 서민일수록 저금리의 은행자금을 활용하기 어렵다.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서민은 어쩔 수 없이 금리가 높은 2금융권이나 고금리의 사채를 선택한다. 필요할 때 필요한 자금을 융통할 수 없는 서민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주거 및 생활유지가 어렵다.

주택도시기금(구, 국민주택기금)이 서민을 위해 낮은 금리로 다양한 정책자금을 공급하고 있지만, 재원의 한계로 충분한 지원이 어렵다. 게다가 기금으로서의 지위와 역할을 부여받은 만큼 최소한의 건전성 관리가 불가피해 돈이 필요한 모든 서민을 대상으로 지원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제도권 금융지원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 금융지원 사각지대에 놓인 서민을 위한 새로운 주택금융이 필요하다.

서민주거에 있어 금융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일시적인 실업이나 자금융통의 차질, 상환부담의 가중 등으로 금융애로를 겪는 서민가구는 늘 여유자금이 부족하여 주거불안정에 노출되기 쉽다. 이것이 신용부족이나 높은 리스크 등을 공유할 수 있는 서민주택금융이 필요한 이유이다. 서민주택금융의 역할은 일반상업은행과 달라야 한다.

우선, 서민주택금융은 상담·교육·사후관리기능을 강화해 서민가구의 건전한 재무구조 유지 및 자산형성을 지원해야 한다. 대출을 꼬박꼬박 갚도록 유도하되, 서민들의 상황을 감안하여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원리금 상환체계를 유지해야 한다. 둘째, 서민 임차가구의 부족한 주거마련 자금지원 및 신용을 보완해 안정적인 주거생활 유지를 지원해야 한다. 셋째, 서민 자가가구의 부족한 주거상향 이동 자금 지원 및 신용을 보완해 더 낳은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넷째, 금융의 공익성(사회적 기능)에 기반한 수익구조 체계를 구축해 유연한 금융을 실현하고, 불가피한 경우에는 손실(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서민가구의 금융소비 특성과 재무상황을 고려한 차등적 지원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제3섹터(사회적 금융)를 통한 정책금융과 상업금융의 소외계층을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서민의 주거안정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금까지와는 다른 서민주택금융 정책이 좀 더 체계적으로 짜여지기를 기대해 본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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