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5년 메독 등급 와인 선정시 메독 지역 와인이 아닌 샤또 오브리옹(Haut Brion)이 1등급 지정을 받은 것에는 배경이 있습니다. 샤또 오브리옹은 1533년 대부호 아르노 드 퐁탁(Arnaud de Pontac) 가문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그라브 와인의 수출 붐을 타고 1666년 뽕딱 4세는 영국 런던에 오브리옹을 마실 수 있는 술집을 열었고, 런던 신사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아 영국 사교계에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었습니다.

미국 독립선언문 작성에 참여하고 향후 3대 대통령이 된 토머스 제퍼슨이 1785년 프랑스 대사로 부임했습니다. 보르도 샤또들을 방문하며 나름대로의 와인등급을 매겼었는데, 특히 오브리옹을 좋아해서 샤또 마고, 라뚜르, 라피트와 같이 1등급으로 분류했고, 이것이 동일하게 메독 1등급 선정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됩니다.

나폴레옹 집권하의 외무장관이었던 타레이랑 뻬리고(Talleyrand Perigord)는 1801년 오브리옹의 소유주가 되면서 외교 협상의 자리에 단골로 오브리옹을 제공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패전국 프랑스의 처우를 결정하기 위해 1814년 10월부터 열린 오스트리아 빈회의입니다. 타레이랑은 프랑스에서 데려간 명셰프가 만들어내는 갖가지 미식 향연에 오브리옹을 곁들여 각국 요인들의 혀를 즐겁게 했습니다. 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회의는 2년이나 걸렸고, 회의가 끝나고 나니 프랑스는 마치 전승국과 같은 입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오브리옹은 1935년 미국 자산가 클라랑스 디용(Clarence Dillon)에 인수되어딜롱(Dillon) 가문에서 손녀를 거쳐 현재는 증외손자인 룩셈부르그의 로버트(Robert of Luxembourg) 왕자의 소유로, 최신 기술 도입과 함께 오브리옹의 전통과 명성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오브리옹은 끌라랑스 디용을 기념하기 위해, 2007년부터 세컨드 와인 바앙(Bahans) 오브리옹의 명칭을 끌라랑스(Clarence) 드 오브리옹으로 변경했습니다.

오브리옹은 보르도 중심부에서 5킬로 정도밖에 안 되는 곳, 보르도 순환도로 내에 걸쳐 있는 뻬싹 마을에 위치합니다. 현재는 보르도시가 뻬싹의 거의 모든 포도밭을 잠식하였고, 두터운 자갈 토양에 자리한 최고급 밭들만 살아남아 있습니다. 오브리옹은 길 건너편에 위치한 라미션(la Mission) 오브리옹, 라뚜르(La Tour) 오브리옹, 라빌(Laville) 오브리옹을 1983년 인수했습니다.

2016년 7월 초 샤또 오브리옹 방문시 다른 샤또들과는 달리 포도밭에 유난히 풍성하게 달린 큼직한 포도송이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포도나무당 6송이만 남겨서 1병의 와인만을 만든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일찌감치 그린하비스트를 하여 영양을 집중시킨 것인지는 다시 방문할 기회가 되면 확인해볼 예정입니다. 또 다른 특징은 발효통으로 컴퓨터 제어장치가 장착된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를 주로 사용하며, 일부이겠지만 오크통도 직접 제작하는 공간도 볼 수 있었습니다.

시음와인으로는 2007년 오브리옹과 라미션 오브리옹을 맛 보았습니다. 오브리옹은 다른 특등급 와인들에 비해 메를로 비중이 높아 보다 일찍 숙성되어 부드럽고 또한 2007년은 평범한 빈티지였기에, 10년이 채 안된 특급와인을 맛볼 때 덜 숙성되어 느끼는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라미션 오브리옹에서는 샤또 마고와 견주어지는 샤또 빨머처럼 오브리옹에 필적하는 면모를 볼 수 있어, 2개 와인을 블라인딩 테이스팅 한다면 맞춰내기가 힘들겠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신성식 ETRI 미래전략연구소 산업전략연구그룹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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