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인문학] 김동훈 지음/민음사/486쪽/1만8000원

한 기자가 메릴린 먼로에게 침대에서 무엇을 입느냐고 물었다. 먼로는 수줍은 척하며 도발적으로 답한다.

"난 아무것도 입지 않아요. 오직 몇 방울의 샤넬 넘버 5뿐이죠." 침대는 누군가의 체취가 남아있는 잔향의 장소다.

이 잔향을 향수로 빚어낸 여인이 바로 샤넬이다.

성공한 디자이너 샤넬은 연인 보이 카펠이 사고로 죽자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그 순간 시골 수녀원에 버려졌던 유년기 시절, 수녀들이 가꾸던 시나몬, 레몬 등의 향기를 기억해 내고 `넘버 5`와 함께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난다.

인문학자이자 저자인 김동훈은 `인문학 브랜드`에서 샤넬 넘버 5라는 브랜드에 잔향을 통한 잠재력의 발산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프라다의 경우도 미우치아의 과거 잠재력이 혁신의 계기가 된다. 골목마다 전단지를 뿌리고 다니던 선동가였던 미우치아는 갑자기 쓰러져가는 기업을 물려받게 된다. 그녀는 사회당원이자 페미니스트로써의 신념을 패션 감각으로 승화시킨다. 당시 많은 디자이너들은 여성의 육감적인 몸을 드러내려고 애쓴 반면, 미우치아는 우아함을 살리면서도 여성의 자유로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단순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과감히 선보였던 것. 군용 소재에 눈길을 돌리고, 가방 소재로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기존 질서에 저항한 페미니스트였기에 프라다만의 독특한 소재와 전략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반대로 프랑스 명품 패션 브랜드 `지방시`는 시대 흐름을 타지 않도록 정체성을 고수하는 데 몰두한다. 파격적인 패션을 추구하고 싶지만, 기존 스타일을 벗어날 용기가 없는 소비자에게 전통의 고딕 패션은 안도감을 줘 도전 정신을 고취한다고 한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에서 오드리 헵번이 입어 유명해진 `리틀 블랙 드레스`에는 이러한 지방시 브랜드 정신이 담겼다.

이외에도 `뱀부백`으로 대표되는 `구찌`의 장인정신과 자연주의, 고객을 유혹해 매장 안으로 불러들이는 `스타벅스`의 세이렌 로고, 메두사를 내세운 패션 규범의 파괴자 `베르사체` 등의 이야기가 저자의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펼쳐진다.

이처럼 저자는 유명 브랜드가 내포한 인문학적 코드와 욕망의 의미를 읽어낸다.

저자 김동훈은 "질 들뢰즈는 내면에 잠든 과거를 잠재력이라고 불렀다"며 "이 잠재력은 자극을 받으면 깨어나기도 하는데, 현대 소비사회에서 브랜드는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원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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