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구기 종목은 상대 진영을 공략하거나 골에 공을 넣으면 득점한다. 야구는 출발했던 선수가 홈으로 들어와야 점수가 된다. 특이하게 야구는 3개의 루(흙과 돌로 쌓은 성)를 거쳐 홈인(가정으로 귀환)해야 하는 까닭에 꽤 인간적인 경기라고 말한다.
지역연고 한화이글스 프로야구팀이 올해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정규시즌 중반 한때 잠시 정상을 넘보기도 했다. 거기까지였다. 아쉽지만 "올해는 이만하면 됐죠? 추운데 야구장에 안 오셔도 돼요"라며 겸양을 보인 것 같다. 11년 만에 독수리 눈빛 이글거리는 베이스볼재킷을 살까말까 망설이지 않도록 일찌감치 배려한 것은 아닐까.
잠실구장에 입성하지 못한 한화의 가을야구가 못내 안타깝다. 대전과 청주구장은 펜스거리가 짧아 홈런공장이라 불린다. 다이아몬드 위 투수는 견제응원에 번번이 주눅 들기 마련이다. 숨 막힐 듯 밀려오는 충청도식 슬로우모션 파도타기응원은 어느새 TV시청자들을 기함하게 만드는 장관으로 각인됐다.
한밭야구장에 8이닝이 오면 절망적으로 지다가도 슬며시 추격의 명승부가 펼쳐진다. 일반관중 같으면 주섬주섬 짐 챙겨 일어서는 파장인데 한화 팬들은 태평해 보인다. 어디 믿는 구석이 있는가 보다. 부러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느긋하다. 느린 것과 느긋한 것은 다르다 한다. 동작이 생각을 미처 못 따라가는 것은 느린 것이요, 알고 있으면서 천천히 움직이는 것은 느긋한 것이라고 개그맨 `남희석`이 들려줬다.
승부와 상관없이 "나는 행복합니다" 응원가를 불렀고 "최강한화" 뜨거운 함성으로 몸부림치기도 했다. 팬들만 아니라 보문산 자락과 꼭대기 시루봉도 잠 못 이루며 여름 내내 몸살을 앓았단다. 우리는 이기면 기뻐하지만 진다고 그다지 낙망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괜찮아유, 맨날 이기면 카지노 딜러유 이길 때도 질 때도 있으니까 야구지유"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다.
스포츠는 고부가가치 문화 콘텐츠다.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동질의식을 고취하는 삶 속의 문화다. 야구용어 가운데 낫아웃, 야수선택, 인필드플라이 같은 규칙을 세세히 모르더라도 세상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임전배 천안문화재단 생활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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