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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수의 음악산책] 정복하라, 아니면 정복 당할 것이다

2018-11-02기사 편집 2018-11-02 07: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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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집 우편함에 지인의 독주회 초대권이 도착해 있었다. 어느 덧 3년 째 접어드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시리즈이다. 32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모두 연주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처럼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 심지어 바흐의 전곡 시리즈를 몇 년에 걸쳐 정복하는, 비장한 각오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 한 일을 해내는 열정의 피아니스트들을 볼 수 있다. 이는 마치, 히말라야의 혹독한 추위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오로지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산악인들의 비장한 각오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 '미션'에서 주인공 신부인 로버트 드 니로가 원주민을 죽이거나 노예로 팔아 넘기던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무거운 짐을 몸에 매달고 험한 산을 오르는 형벌을 스스로에게 내리듯 말이다.

이처럼 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 초인간적(ubermensch) 도전을 하게 되는 것은 분명 단순한 열정을 뛰어넘는 오기와, 지금의 나보다 한 단계 높은 목표를 향해 나가려는 인간의 욕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욕심을 버리고 모든 것을 내려 놓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시작은 목표를 잘 성취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 꼭대기에 올라가 태극기 깃발을 제일 처음으로 꽂고 싶은 야심 찬 마음에서 출발했지만, 한참을 가다 보면 고달픈 과정을 이기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 하고 싶은 마음과 싸우고 끝까지 완주해 마침내 마지막 지점에 도달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이자 희망이 되는 것이다.

피아니스트에게 작곡가가 누구 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른 악기들에 비해 작곡된 작품들이 가장 많기 때문에 전곡 정복이란 프로젝트는 어떤 작곡가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다 히말라야 급일 수 밖에 없다. 베토벤이 바이올린을 위해 작곡한 협주곡은 단 한 개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해 작곡된 소나타도 10개에 불과하다. 이 정도라면 나름 도전과 정복을 해볼 만 하다. 이에 반해 베토벤이 피아노를 위해 작곡한 협주곡은 5개이고 피아노 소나타는 32개이다. 선대의 음악가이자 음악의 아버지로 여겨질 만큼 위대한 작곡가인 요한 세바스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구조를 생각했던 것일까? 32라는 숫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 했던 것은 아닌지 베토벤에게 묻고 싶지 않는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주제인 아리아(aria)가 총 32마디이고, 변주곡 전체의 구조도 시작인 아리아와 이를 뒤따르는 30개의 변주곡, 그리고 나서 곡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아리아를 포함해 모두 32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좋은 음악회 초대를 받고 잠시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연주회를 준비하는 피아니스트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하고 헤아려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베토벤이 말했듯, "정복하라, 아니면 정복 당할 것이다" 도중하차를 할 수 없는 이유이자 위대한 프로젝트에 도전하는 연주자에게 이를 완수할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조윤수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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