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미의 독립영화 읽기]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도시에 어둑한 밤이 내리자 윤영은 송현이 야경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던 그녀의 사촌언니 치과에 들어가 치료실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창 밖을 바라본다. 아,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옳지 않겠다. 왜냐하면 이 치과가 송현의 사촌 언니가 운영하는 곳임을, 송현이 이곳 치료실에서 `야경 참 좋겠다`라 말하는 것을 보게 되는 건 좀 더 뒷장면이기 때문이다. 야경을 바라보는 윤영의 뒷모습 옆으로 `詠鵝(영아: 거위를 노래하다)`라는 타이틀이 떠오른다. 영화를 본 지 한 시간쯤 지난 뒤다.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의 구성은 독특하다. 군산에 가기 전의 이야기와 군산에서의 이야기를 뚝 잘라 시간 상의 앞과 뒤를 바꾸어 버렸다. 그래서 관객들은 언제나 의뭉스럽게 맨질한 사람들의 겉을 보다가 그들이 왜 그렇게 했는지를 한참 뒤에서야 알게 된다. 윤영은 군산을 다니는 동안 관광안내지도부터 사진, 폐가, 민박집, 민박집의 사람들까지 많은 것들을 끊임없이 응시한다. 그리고 그 응시로부터 모든 불안과 의구심이 생겨난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진실인가.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것 너머 저편의 사람의 마음, 그 곳의 비밀, 도시의 정서에까지 다가가보려 끈질기게 바라보지만 이는 허락되지 않는다. 어쩌면 관객처럼 그는 아직 군산에 가기 전의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윤영은 때때로 잠이 들어버리고 꿈을 꾼다. 어디서부터 꿈인지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은 꿈을 꿔서 그 이미지들을 보는 것인지 이미지를 보았기 때문에 그러한 꿈을 꾸는 것인지 모호하다. 그렇다면 민박집 사장의 사진들이 그의 후일의 행동들을 지시한 것은 아닐까. 윤영이 자꾸만 진실에 가닿지 못하고 미끄러지기에 카메라의 위치는 거의 문 뒷편이다. 화면의 대부분은 집의 벽이나 문으로 가려지고 사람들은 겨우 보일 수 있는 공간을 허락받은 듯 놓인다. 우리가 결국 알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윤영이 느끼는 기시감 정도의 진실이다. 그렇기에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경계인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특히 윤동주 시인에 빗대어서 표현되는 재중동포에 대한 대사들은 국가라는 개념을 다시금 고쳐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

영화의 구성과 주어지는 단서들, 많은 여백은 우리들을 난처하게 만든다. 몇 번이나 이대로 보아도 좋을 지 망설여지지만 그 길목마다 익숙한 배우들의 힘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영화 속을 거닐게 된다. 무엇보다 영화의 주인공인 박해일, 문소리 씨는 이를 매력적으로 수행한다. 미로 같은 서사 속에서도 생기넘치는 인물을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때때로 웃음짓게 한다.

대전아트시네마 장승미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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