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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이야기] 알고 보면 비효율적인 언어생활, 겹말

2018-11-01기사 편집 2018-11-01 07: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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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두꺼운 겉옷을 챙겨 입어야 하는 날씨가 되고, 한 해 끝이 다가오니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 오는 일이 늘었다. 건강을 묻는가 했던 친구의 연락은 결국 올해가 가기 전 모여서 한 잔 기울이자는 이야기로 흐른다. 아이도 한창 자랄 때인데 연말 모임이 다 무엇이냐고 장난스럽게 핀잔을 했더니 이미 '처가댁'에서 아이들을 봐주기로 했단다. 그러면서 '미리 예약'해야 하니 '12월 달' 초에 다시 물어보겠단다. 간단히 대답하고 다음 칼럼에는 '겹말'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어서 바로 그 친구의 말을 기록해두었다.

겹말이란 같은 의미를 지닌 형태의 말을 연속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동의중복', '이중표현'이라는 말로도 사용하는 겹말은 우리 언어생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실태이다. '역전(驛前) 앞', '고목(古木)나무'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겹말의 대표적인 예이다. 필자의 친구가 건넨 말에서 '처가댁'은 '가(家)'에 이미 '집'의 의미가 있으므로 굳이 겹쳐서 쓰지 않아도 된다. 단, 겹말을 사용할 때 특정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즉, '댁(宅)'처럼 높이고자 할 때 겹말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때도 있다. 또한 '예약(豫約)'에 이미 '미리'라는 의미가 존재하고, '12월(月)'에 '달'이 있으므로 중복해서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겹말 사용은 말하기뿐만 아닌, 글쓰기에서도 쓰임이 종종 나타난다. 필자가 수업하는 글쓰기 강의에서도 이러한 겹말의 사용은 많이 지적된다. 예를 들어 글의 끝에 '간단히 요약하면'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요약(要約)은 '말이나 글에서 요점을 잡아서 간추린다'라는 뜻으로 '간단히'를 붙여서 사용하면 안 된다. '간단히'를 사용하려면 '간단히 줄이면'처럼 고쳐 쓰면 된다.

이러한 겹말은 2음절 한자어와 고유어 사이에서 주로 나타난다. '약숫(藥水)물', '한옥(韓屋)집', '강촌(江村)마을', '계수(桂樹)나무'가 그 예이다. 그리고 '캡(cap)모자', '드럼(drum)통'처럼 고유어와 외래어처럼 서로 다른 어휘에서도 나타난다. 또한, 한자어와 한자어가 겹쳐 쓰이기도 한다. '탄신일(誕辰日)'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신(辰)'이 이미 날이라는 의미임에도 불구하고 뒤에 '日'을 붙여 의미를 강조한다. 이는 '신(辰)'이라는 말을 개별적으로 보지 못하고 '탄신(誕辰)'으로 묶어서, 그 의미를 '탄생(誕生)' 정도로 생각하고 뒤에 '일(日)'을 붙이는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겹말은 사실 언어 경제성 원리 측면에서 어긋난다. 따라서 겹말 사용은 잉여적이며 소통에서도 비효율적인 언어생활인 셈이다. 그런데도 일부 겹말 어휘들은 대중에게 자주 사용됐다는 것을 근거로 사전에 표제어로 올라가 있다. 교육 현장에서는 겹말을 '중복사용'이므로 피해야 할 것으로 가르치면서 사전에서는 곳곳에 겹말이 기록되어 있으니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매우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렇게 언어 사용 기준이 모호해지면 결국에는 많은 겹말이 관용적으로 허용될 것이다. 따라서 겹말 사용을 분명하게 고쳐 쓸 수 있도록 국어 전문가를 비롯한 기관은 명확한 기준으로 정리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국어 사용자의 개인적인 노력으로는 자신이 사용하는 말에 대한 의미를 한 번쯤 되짚어본다면 시나브로 명료하고 효율적인 언어생활로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박원호 한남대 국어문화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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