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와 남북의 화해 무드가 무르익어가는 이즈음, 우리 문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중요한 사건이 하나 진행되고 있다. 남북한 언어의 이질화를 극복하기 위해 2004년부터 시작된 `겨레말큰사전`의 편찬 작업이 그것이다. 이 작업은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적지 않은 진척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관심을 크게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민족사적 과업은 남북 관계나 정권 교체 등의 외적 변수에 의해 단속(斷續)의 과정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국어사전을 남북한이 공동으로 사전을 편찬하는 일은 사실 특정 정파나 정권의 문제를 넘어서는 민족적인 사업이다. 언어의 동질성 회복은 문화 동질성 회복의 기본적 요건이고, 나아가 민족 통일의 대과업을 완성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준비 작업이기 때문이다.

`겨레말큰사전`은 분단 이후 남북의 국어학자들이 함께 편찬하는 첫 사전이라는 데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이 사전이 편찬되면 남북한 사람들이 함께 보는 첫 국어사전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남북의 학자들은 우선 공통으로 쓰는 말과 서로 다르게 쓰이는 말을 합쳐 33만 개를 수록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분단 이후 남북에서 뜻이 달라진 낱말의 뜻을 적극 반영한다는 방침을 정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또한 남북 및 해외 동포 사회에서 널리 쓰이면서도 남한의 `표준국어대사전`과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 수록되지 않은 어휘 10만여 개를 발굴하여 수록하기로 했다. 이는 국어의 확장성을 제고하기 위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새 어휘 조사 방법으로는 지역어 조사 문헌어 조사로 나뉘어 진행하기로 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계획에 의한 후속 작업들이 투자한 시간에 비하여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다행히 지난 10월 9일 한글날 이낙연 국무총리는 `겨레말큰사전`의 편찬 작업을 조속히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사전 편찬 작업은 민간에서 상업적으로 추진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과거에 종이책 사전이 많이 보급되던 시절에는 상업 출판이 가능했지만, 오늘날에는 전자 사전 형태로 활용되기 때문에 출판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남한과 북한의 언어는 분단 70여 년 동안 심각한 이질화의 길을 걸어왔다. 일례로 오징어와 낙지가 남북한에서 서로 반대의 것을 지시한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렇다. 두음법칙으로도 남북한의 문법적 이질감은 심각하다. 남한에서는 두음법칙을 인정하지만 북한에서는 그것을 원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 외에 남한에서 쓰는 단어가 북한에서는 쓰이지 않는 사례가 많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북한 언어의 차이는 특히 외래어와 관련한 부분에서 심각하게 갈린다. 오늘날 남한에서는 외래어 차용이 지나치게 많아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곤 한다. 대도시의 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고유어는 보이지 않고 국적 불명의 외국어 간판들이 즐비하다. 적지 않은 대중가요의 가사들은 이미 어문규정을 포기한 지 오래 되었다. 심지어는 국가 기관이나 공공 기관에서도 그런 경우가 적지 않다.

반면에 북한에서는 외래어에 대한 배타심이 지나치다 싶은 정도로 강하다. 북한의 축구 경기를 중계하는 말을 들어보면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가령 골키퍼를 문지기라고 하고, 코너킥을 구석차기라고 한다. 스포츠와 관련해서는 국제적인 용어를 그냥 사용해도 될 터인데 굳이 고유어로 바꿈으로써 오히려 불편하다. 북한의 방송이나 신문을 보면 그러한 불편함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남북한의 언어적 이질감 해소를 위해 `겨레말큰사전`이 빠른 시일 내에 발간되기를 바란다. 이 사전을 남북한 사람들이 함께 보면서 민족공동체 의식을 고양하면서 통일의 길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아무리 거대한 통일 담론도 언어의 공동체를 회복하지 않으면 사상누각에 불과한 일이다. 언어의 동질성 회복은 정치, 사회, 문화의 통일에 앞서서 이루어져야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겨레말큰사전` 편찬에 국가적, 국민적 관심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형권(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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