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천사 엄마

이선미 을지대병원 인공신장실 간호사.
이선미 을지대병원 인공신장실 간호사.
마리안느 스퇴거, 마가렛 피사렉.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를 위해 평생을 봉사한 소록도의 간호사들이다. 푸른 눈동자를 가진 이들의 생소한 모습만큼이나 당시 그 곳의 환경 또한 생경스러웠으리라. 40년 넘게 머무르며 봉사 한 이들 덕분에 간호사와 의사, 그리고 봉사자들이 소록도로 향하게 됐다.

전남 고흥반도 끝자락 녹동항에서 1㎞를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소록도.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한 모양이어서 붙여진 이름인 이곳은 우리에게 한센병(나병, Leprosy)섬으로 더 유명하다. 1916년 소록도에는 국내 유일의 한센병 전문병원인 자혜의원이 들어섰다. 한센인 100여명 강제수용을 시작으로 한센병 치료섬인 소록도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아름다운 소록도에 한센인을 모은 것은 육지와 가까워 격리 수용하기가 쉽고, 물이 맑고 깨끗한 곳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열대와 아열대 지방에서 많이 발생되는 나병은 유전병도 선천병도 아니다. 나균(Mycobacterium leprae)이 발병원으로 피부에 침윤, 구진, 홍반, 멍울, 지각마비(知覺痲痺)가 나타난다. 피부, 말초신경계, 상기도를 통한 접촉으로 감염될 수도 있다. 전염력은 별로 높지 않으나 한번 발병되면 눈썹이 빠지고 피부와 근육이 문드러지는 탓에 문둥병이라고도 한다. 그렇게 몹쓸 질병을 탓하며 일상에서 고립되고, 가족과도 이별하면서 외면받은 한센인들이 소록도로 모인 것이다.

마가렛은 1959년(당시 24세), 마리안느는 1962년(당시 28세) 소록도에 처음 발을 딛게 됐다. 오스트리아 국적으로 인스부르크 간호대학을 졸업한 간호사인 이들은 벨기에 구호단체 다미안을 통해 이역만리 한국에 의료봉사를 위해 방문했다. 봉사기간을 마치고 단체는 떠났지만 이들은 소록도에 남아 한센병 환자들 곁을 지켰다. 한센병 자녀들을 위해 영아원을 도맡았는데, 특히 영양의 중요성을 인지해 배급 후 남은 우유와 음식이 있으면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챙겨줬다.

나병치료가 발달된 인도에 가서 기술을 배우고 구호약품을 보급 받아 소록도 한센인들을 돕기도 했다. 또한 선진 의료진을 초청하고 장애 교정수술과 물리치료기를 도입하는 등 그들의 재활의지를 북돋우는 역할도 자처했다. 두 명의 간호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신비한 힘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이들은 외국인이지만, 사회와 분리된 소록도 주민들에게는 간호사, 수녀, 엄마, 소록도 할매, 노랑머리 할매라고도 불렸다.

작은 가방 하나 들고 와서 인생의 중요한 시기 대부분을 소록도에서 보내며 사랑을 심어놓고, 어느덧 백발이 된 마리안느는 대장암에 걸리게 되자 더 이상 머무르면 폐가 되겠다는 마음이라며 편지 한 통을 남기고 당신들의 나라로 떠났다. 헌신과 섬김으로 사랑을 나누고 되돌아간 고국의 품에서 마리안느는 질병이 완치됐다고 하고, 마가렛은 치매에 걸려 시립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밝게 웃는 사진 위로 `수녀 테레사, 닥터 슈바이처, 마틴 루터킹`의 모습이 겹쳐진다. `소록도 천사 엄마`인 그들의 숭고한 마음이 어느덧 내 마음에 메아리가 돼 울린다. 나이팅게일 선서문 그 이상의 뜻과 간호정신을 몸소 실천한 소록도 천사 엄마 마리안느와 마가렛, 그들의 정신을 받들어 내가 있는 이곳에서부터 사랑을 실천하리라. 이선미 을지대병원 인공신장실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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