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가 스스로 제 살 길을 찾는다는 한자성어 각자도생(各自圖生), 원래는 대기근이나 전쟁 등 어려운 시대에 백성들이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런데 최근 사회자본 부족 사회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키워드로 등장했다. 신도림역에만 치킨집이 790개라니 영세자영업자들의 생존이 심각한 실정에 처해있다. 이들만이 아니다. 한 때 잘 나가던 기업이나 대학들도 과거의 영화에서 벗어나 각자도생을 외치고 있다. 심지어는 한 가족 내에서도 청년 구직, 중년 실업. 노인 노후 등 말 그대로 세대별로 제 살길을 모색하는 시대가 됐다.

각자도생 사회에 절실한 것이 신뢰, 협력, 상부상조하는 인간관계 등 무형의 사회자본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자료에 따르면 `사회적 자본`을 북유럽 수준으로만 쌓아도 4%대 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사회적 자본은 바닥수준이다. 다행인 것은 우리사회에 최근 `사회적 가치`의 싹이 움트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성장과 민주화의 성숙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난제들을 해결할 사회 혁신의 중심에 누가 서서, 어떠한 방법으로, 어느 방향으로 풀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치열해진 것이다.

한국사회학회가 중심이 되어 수행한 공동연구 결과인 `사회적 가치와 사회혁신 - 지속가능한 상생공동체를 위하여`에서는 사회적 가치를 `21세기의 시대정신이자 사회적 흐름을 견인할 근원적이고도 미래지향적인 기획의 잣대`라고 했다. 사회적 가치는 공동체를 새롭게 하는 힘이며, 혁신을 사회화하는 원천이라고도 했다. 지난 2014년 발의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 에 의하면, `사회적 가치`란 사회, 경제, 환경, 문화적 영역에서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는 가치를 의미한다고 정의되어 있다. 제19대에 이어 제20대 국회에서는 `공공부문의 사회적 가치 증진`을 표방하는 법안이 발의되어 논의 중이다. 금년 1월 문재인 대통령은 향후 정부정책의 중심을 `사회적 가치`에 두겠다고 했다. 정부도 `사회적 가치 실현을 선도하는 공공기관`을 100대 과제 중 하나로 선정해 공공기관의 실적평가에서 사회적 가치 항목의 비중도 늘렸으며 예산 편성이나 인사의 기준으로 삼겠다고 했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도 공공기관이 혁신성장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는 인식하에 기관 고유의 지식과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 `원자력·방사선 안전 분야의 국내·외 컨설팅, 교육 등을 수행하는 민간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금년 중 1개 업체 창업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매년 1개 민간업체 창업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또 대전·세종의 지역 경제 및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한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관내 공공기관과 사회적 경제기업 간의 수요-공급 분석 및 매칭을 통한 구매 활성화, 소셜 벤처 저변 확대, 사업범위 확대 및 창업 지원, 행·재정적 지원, 교육/자문, 사회가치 재창출 등을 목표로 하는 `대전·세종 사회적경제활성화플랫폼`을 10월 구축했으며, 세부 추진내용을 관계기관들과 논의 중에 있다.

또 비정규직 고용합리화 및 고용개선을 위해 지난해는 직접고용으로 계약됐던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정규직 직원으로 전환 채용했고, 용역, 파견 등의 형태로 간접 고용계약중인 근로자에 대해서도 정규직 전환협의 기구를 통해 정규직 전환방식을 논의 중에 있다. 채용부문에 있어서도 직무능력중심 블라인드 채용형태로 우수 인재를 선발해오던 채용의 형태를 금년부터는 사회형평적 일자리 창출을 선도할 수 있도록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장애인, 보훈대상자, 고졸 및 경력단절여성 채용을 위한 별도채용 전형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그들이 사회 구성원과 가장으로써의 역할을 같이 할 수 있도록 기관의 책임을 적극적으로 넓혀가고 있다.

어느새 연말이다. 평소 고마웠던 분들에게 드리는 작은 선물로나마 사회적 기업이 생산한 상품을 선택한다면 `사회적 기업의 자생력 강화 - 지속가능한 사회적 기업의 확대 - 사회적 기업 생태계 활성화`라는 사회가치 확산의 소중한 마중물이 되는 것이다. 이는 곧 받는 분들과 함께 일자리 창출, 친환경, 지역공동체 강화 등 어렵고 멀게 느껴졌던 사회적 가치를 덤으로 나눌 수 있는 훈훈한 연말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김인구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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