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파도바성당`에는 중세 후기 대부호였던 스크로베니 가문의 개인 예배당이 남아 있다. 이 예배당에는 `지오토 디 본도네`가 그린 프레스코 벽화가 가득 그려져 있다. 그런데 그림 중 하나는 예수가 무서운 눈빛으로 채찍을 휘두르며 오른쪽에 있는 두 남자를 때리려 하고 있다. 그 중 한 남자 손에는 빈 새장이 들려있고 그의 발 밑 우리에서는 놀란 양 한 마리가 뛰쳐나가고 있다. 그림 왼쪽에는 어린아이들이 겁에 질려 예수의 제자들 품에 숨어 있고 비둘기를 가진 아이도 보인다. 혼이 나고 있는 두 남자들은 가축 상인과 환전상이고 어린아이들은 비둘기를 팔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왜 신성한 성전에 환전상과 동물들이 있었는지 의문이 간다. 당시 유대인들의 율법에는 정기적으로 예수살렘 성전에 `흠 없는` 소나 염소, 양, 비둘기 등을 희생 제물로 제사를 지내야 했다. 그런데 `흠 없는 동물`을 먼 지방에서 끌고 오는 것이 각종 질병 등으로 어렵게 되자 성전 앞에 상업적 장사가 이루어지면서 성전 안에서도 판매행위, 즉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한편 유대인들은 성인의 경우 성전세를 내야만 했는데 외국지폐를 소유한 경우가 많아 성전 앞에서 반세겔(20세 이상 히브리 남자들이 율법 규정에 따라 성전에 내는 세금) 은화를 바꾸는 환전상이 성행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판매상과 환전상들이 정상적인 범위를 벗어나 독점적 지위를 누리면서 담합으로 높은 이자를 받고 폭리를 취한 것이다. 중세초기만 해도 빌려준 돈에 대한 이자를 받는 것을 금기시했다. 말은 새끼를 낳지만 돈은 새끼를 낳지 못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돈의 교환가치에 방점을 둔 것이었다. 아리스토탈레스는 말이나 집을 빌려줄 때는 사용료를 받아도 된다고 했다. 그 주인이 말이나 집을 사용하지 못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되기에 값을 치러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돈을 빌려줄 때는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아닌 여윳돈을 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사상도 중세 후기로 들어오면서 만기가 지나 연체 시 이자를 받는 경우부터 시작해 점차 돈으로 새끼를 낳아 이자를 받는 것이 용인되기 시작했다. 18세기 고전경제학파 시대에 이르러 돈을 빌려주는 것은 현재 소비를 포기하고 미래소비를 포기하는 것이니 그 대가가 이자라는 것이다.

`Usury`는 흔히 대금업으로 번역되지만 점점 일반적인 대금업을 가리키기 보다 고리대금업을 지칭하는 용어로 변질됐다. 최근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부채 총 규모는 150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나 규모가 이전에 비해 약간은 더디게 오르고 있지만 우리 경제의 규모에 비쳐 볼 때 적지 않은 수치로 보인다.

정부는 가계부채를 관리하기 위해 이달부터 시중은행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DSR지표를 본격 도입하고 있다. 혹자는 최근 은행권 등 금융기관들의 과도한 순이익규모가 금융기관들의 예대마진에 의한 이자장사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중세시대 이자를 받아야 하느냐 논쟁에 이어 최근 적정이자에 대한 논쟁도 치열하다. 특히 기준금리가 정해지는 상황에서 금융기관별로 달리 적용되는 가산금리에 대하여는 지나치게 고금리라는 따가운 질책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일반채권자와 대부업자 모두 이자율의 최고한도를 지난 2월 8일부터 연 24%로 이전보다는 낮춰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려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법정최고금리를 정하는 근본 이유는 사회적 약자와 금융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함은 물론이다. 경제활동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 금융(finance)이다. 경제활동에서 심장의 역할을 하는 적정금리정책은 한 국가의 경제활력을 좌우하는 핵심 정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전용석 농협중앙회 대전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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