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5년 메독 그랑 크뤼 끌라세로 선정된 61개 샤또 중 메독 지역 와인이 아닌 유일한 예외인 1등급 샤또 오브리옹(Haut Brion)은 그라브(Grave, 자갈을 의미) 지역 와인입니다. 그라브 와인 지역은 메독보다 상류에 위치하여, 보르도 아래로 바로 인접한 지역에서 남동쪽으로 가론강을 따라 좌안에 50km 정도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라브는 보르도 지역에서 최초로 와인이 생산된 곳이며, 보르도 항구가 가까웠기에 그라브 와인은 가장 먼저 해외로 수출되었습니다. 이미 16세기부터 오브리옹은 영국에서 최고 와인으로 유명세를 탔고, 미국 3대 대통령이 된 토머스 제퍼슨이 프랑스 대사로 재임시 가장 좋아했던 와인입니다.

그라브 지역은 빙하기 때부터 형성되어 모래와 철분이 다양한 비율로 섞인 사암과 점토성 하부토에 강물에 의해 형성된 자갈과 조약돌이 두껍게 쌓여 있습니다. 메독 와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타닌 맛을 내는 까베르네 쇼비뇽의 비율이 적고 메를로 비중이 높아 기품이 있으면서도 우아하며 한결 부드러운 느낌을 주기에, 메독보다는 비교적 일찍부터 즐길 수 있습니다.

그라브 와인은 1959년이 되어서야 16개의 샤또가 크뤼 클라세 지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메독 등급과는 달리, 등급을 세분화하지 않았고 9개 화이트 와인도 등급을 부여했습니다. 6개 샤또가 화이트와 레드 와인 등급을 같이 받았기에, 레드 와인 등급만을 받은 7개 샤또와 합쳐 등급 레드 와인은 13개입니다.

이들 그라브 등급 와인들이 모두 뻬싹((Pessac)과 레오냥(Leognan)을 포함한 그라브 북부 지역 마을들에 분포하기에, 1987년 `뻬싹-레오냥`이란 마을 명칭(AOC)이 출범했습니다. 뻬싹-레오냥 와인 명칭의 탄생에는 보르도 와인업계를 대표하는 루르똥(Lurton) 가문의 앙드레(Andre) 루르똥의 공헌이 지대했습니다.

앙드레 루르똥은 훌륭한 보르도 와인 생산을 위해 적합한 토양과 미세기후 지역을 찾아내고 포도 재배에서 와인 생산까지 전 과정을 관장하는 94세의 현역으로 `보르도 와인의 대부`라는 칭송을 받는 와인 메이커입니다. 앙드레 뤼르똥은 1982-1987년 뻬삭-레오냥 포도재배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도시화에 치이고 황폐화된 뻬삭-레오냥 지역을 10년에 걸쳐 포도원별, 작은 구획별 토질 분석을 통하여 뻬삭-레오냥 와인의 품질 수준을 높였습니다.

뻬싹 마을에 위치한 샤또 오브리옹 외에 뻬싹-레오냥을 대표하는 등급 와인은 오브리옹의 길 건너편에 위치하며 오브리옹 명칭을 공유하고 있는 라미션(la Mission) 오브리옹, 라뚜르(La Tour) 오브리옹, 라빌(Laville) 오브리옹이 있습니다. 보르도에서 최초로 샤또명이 붙여진 빠쁘 끌레망(Pape Clement)도 근처에 있습니다. 샤또 빠쁘 끌레망은 후일 아비뇽의 교황 클레멘트 5세로 선출된 대주교 베르뜨랑 드 고쓰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오브리옹과 빠쁘 끌레망은 보르도 순환도로 내의 시내에 위치하는데, 이들보다 남쪽 숲속에 위치한 대표적인 샤또로는 1991년 스키선수 출신 부부가 인수하여 포도나무와 포도를 활용한 화장품 꼬달리(Caudalie)와 스파로 유명한 스미스 오 라피트(Smith Haut Lafite)와 가리비 껍질의 황금빛 테두리에 샤또 사진을 넣은 멋진 라벨과 화사한 향기의 화이트 와인으로 명성이 높은 까르보니유(Carbonnieux)가 있습니다. 다음에는 이들 뻬싹-레오냥의 3개 샤또, 오브리옹, 스미스 오 라피트, 까르보니유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신성식 ETRI 미래전략연구소 산업전략연구그룹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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