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음식을 맛없게 먹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매일 반복해서 먹거나, 음식이 만들어지고 한참 시간이 지난 뒤 다 식은 음식을 먹거나.

영화 베놈은 `베놈`이라는 매력적인 빌런 캐릭터를 가졌음에도 위 두 가지 요소를 고루 갖춰 결국 매력 없는 영화가 됐다. 극 중 캐릭터들은 그간 지루하게 봐왔던 전형성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 주인공 베놈은 악당임에도 전형적인 히어로의 탈을 벗지 못했으며, 악당 역인 칼튼 드레이크(리즈 아메드) 역시 기존 악당들과 차별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에디 브록(톰 하디)의 애인인 앤 웨잉(미셸 윌리엄스)도 그간 히어로물에 나오던 여자 캐릭터들과 유사했다. 그동안 질리도록 봐온 캐릭터들을 한데 모아 보여줬으니 신선한 플롯과 캐릭터를 기대했던 관객 입장에서는 지루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영화가 시작돼 베놈의 활약이 펼쳐지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도 관객들을 지루하게 만든 한 요인이다. 영화는 에디 브룩과 칼튼 드레이크를 설명하는데 초반부 50분 가량의 시간을 할애한다. 아무리 재밌는 영화라도 초반에 너무 뜸들이면 관객들은 지치기 마련이다.

영화 베놈은 빌런 히어로물임에도 아이러니하게 권선징악형 스토리다. 정의로운 기자 에디 브록이 칼튼 드레이크 박사의 회사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비리를 캐다가 외계 생명체 `심비오트`의 공격을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기자 생활을 하며 결혼을 앞둔 에디 브록은 어느 날 여자친구이자 법조인인 앤 웨잉의 노트북에서 `라이프 파운데이션`이 감추고자 하는 비리를 보게 된다. 숨겨진 진실 앞에서 에디 브록은 특유의 정의감을 발휘해 라이프 파운데이션을 취재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실직과 파혼이다. 한동안 폐인처럼 생활하던 그는 어느 날 내부자 고발로 파이프 파운데이션에 잠입하게 되고 외계 생명체 `심비오트`와 맞닥뜨리며 베놈으로 변한다.

극중 에디 브룩은 칼튼 드레이크 박사와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에디 브룩이 가난하지만 정의로운 반면에 칼튼 드레이크 박사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도덕성이 낮은 악당이다. 인간으로서 이 둘의 대조적인 면모는 외계 생명체 심비오트와 결합해서 베놈이 된 뒤에도 영향을 미친다. 에디 브룩은 유쾌하지만 마음씨 착한 악당이 되는 반면, 드레이크 박사는 지구를 파괴하려는 진짜 악당이 된다.

이 영화가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CG 작업을 통해 탄생한 베놈 캐릭터와 화려한 액션씬은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베놈의 프로덕션 준비 과정에 있어 루벤 플레셔 감독이 주요 스태프들과 가장 긴밀하게 이야기를 나눴던 부분 중 하나는 베놈을 살아있는 캐릭터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날카로운 이, 커다란 흰 눈, 180도로 펼쳐지는 턱, 따로 활동이 가능한 긴 혀와 마치 범고래 무늬를 연상케 하는 검은색 피부는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베놈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특징들을 컴퓨터 그래픽과 CG 작업을 통해 탄생시켰다.

반면 영화 `매드 맥스`와 `덩케르크` 등 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뽐냈던 톰하디의 존재감이 많이 부각되지 못한 점은 아쉬운 점으로 작용했다. 그간 톰하디가 영화에서 맡아온 캐릭터들이 워낙 매력적이어서 이번 영화에서도 그런 톰하디의 매력을 기대했던 관객들이 다수였을 것이다.

외계 생명체 심비오트와 인간이 결합해 탄생한 베놈은 마블 시리즈 중 하나인 `스파이더맨`에 등장하는 빌런 히어로다. 이러한 캐릭터만 따로 빼내 새롭게 만들어진 영화 `베놈`은 그 시도만큼은 신선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빌런 히어로는 이런 게 아니었다. 영화 데드풀처럼 잔인한 장면이 난무하는 진짜 악당물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이번 영화는 김빠진 맥주처럼 시시할 뿐이었다. 우리는 좀 더 강한 임팩트를 원한다.

원세연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원세연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