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전역을 나오면 `토속함바식당`이라는 이름의 가게가 있다. 이 식당을 발견했을 때 어떤 음식을 팔면 함바식당에 토속이라는 말을 붙여 쓸 수 있을까 매우 궁금했다. 대전만의 색을 더한 `함바집`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차림표를 확인하진 않았지만,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여느 함바집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글날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발견한 곳이라 씁쓸함은 더 깊게 남는다.

함바는 일본어 `飯場(はんば)`에서 온 말로 본래 뜻대로라면 식당을 일컫는다. 그러나 우리가 별생각 없이 말하는 함바집은 일제강점기 당시 건설현장에 강제로 징용되었던 조선인들의 허름한 숙소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해방 이후에 이 말이 그대로 사용되면서 지금의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의 숙식을 책임지는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아픈 배경을 품고 있는 말에 `토속`이라는 말을 붙여 크게 걸어놓으니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

이렇듯 우리는 흔히 외국어와 외래어를 사용할 때 그 의미에 대해 크게 고려하지 않는 듯하다. 어딘가에서 들어 익힌 말을 굳이 사전을 찾아 확인하고 사용하는 번거로운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남이 사용한 말의 의미를 대강 이해하고 이후에 언어생활에 반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생활은 업무 속에서 사용하는 용어에서 두드러진다.

건설 현장에서 일본어 사용이 난무하는 것은 더 말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알 것이고, 주변 회사원들이 사용하는 말을 보아도 `아이데이션(Ideation)`, `니즈(Needs)`, `컨펌(Confir m)`처럼 굳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궁금한 언어 사용이 드러난다. 공문서에서도 이런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공문서에서는 `금번(今番)`, `조사 실적 거양(擧揚)`처럼 한자어 사용이 많이 나타나는데, 정부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표현이 공식적인 글에 여전히 사용되는 것은 한자어가 격식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의식적인 관행이 원인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한자어 사용은 내용 전달 부분에서도 문제를 엿볼 수 있다. 이번 한글날 특집으로 방송한 `KBS 도전 골든벨`에서 농업마이스터고에 다니는 학생에게 공부하는 데 어려운 점을 묻자, `시비(施肥)`, `위조(萎凋)하다`처럼 한자로 된 농업 용어에 대한 어려움을 드러냈다. 그도 그럴 것이 `거름주기`, `시들다(마르다)`처럼 사용했다면 그 학생이 어려움을 표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외국어와 외래어를 지나치게 사용하는 언어생활은 전문성을 보여주거나 격식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의식적인 측면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부터 전문 용어나 격식 표현을 한자로써 사용하던 언어생활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다. 물론 의학 용어와 같은 부분에서 우리말로 대신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으므로 이러한 부분에서의 사용은 불가피할 것이다. 대체될 수 없는 전문 용어를 제외하고, 전달과 소통이 중요한 상황에서 우리말 표현을 놔두고 외국어 혹은 외래어로 사용하는 것은 분명히 고쳐져야 할 부분이다. 함바집보다는 `현장 식당`, 아이데이션보다는 `상상하기`처럼 우리말로 사용하는 것이 뜻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고 전달력도 높일 수 있으므로 굳이 다른 나라 말로 돌아가는 수고를 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박원호 한남대 국어문화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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