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사칼럼] 수족냉증

조선시대 최립이라는 시인은 서리가 내린 뒤 가장 아름다운 경치는 발갛게 물든 단풍잎이라고 했다. 요즘 산책을 하다 보면, 옛사람의 말이 헛 말이 아님을 알 것 같다. 한기가 몰아칠수록, 더욱 극렬히 산화하는 단풍의 저항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러한 가을이 깊어질수록 수족냉증을 앓는 사람들의 한약국 방문빈도수가 높아 진다. 손발은 인체에서 가장 수고롭고도 헌신적인 부위지만, 인체지도에서 보면 심장에서 가장 원거리에 있는 변두리 소외지역이다. 외부온도가 떨어지면, 혈액은 인체의 가장 중추적인 뇌와 심장 및 내장기관으로 몰리고, 변두리 지역인 팔다리는 소외되는 것이다.

심장은 한의학에서 `군주지관(君主之官)`이라고 정의하는데, 수족냉증을 국정(國政)에 비유한다면, 임금의 은혜가 변방까지 골고루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심장의 힘찬 펌프질이 수족말단의 미세혈관까지 적절하고도 효율적으로 전달돼야 하는데, 자율신경의 실조(失調)로 인해 혈액순환이 정체되는 것이 바로 수족냉증의 모습이다.

수족냉증을 앓는 대다수는 여성이고, 특히 갱년기를 전후로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해 초래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근육량이 적을 뿐 아니라, 초경의 시작부터 폐경까지 늘 `예비빈혈`상태에 처하기 쉬우므로, 특히나 수족냉증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수족냉증의 한방치료는 빈혈상태를 개선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아울러 혈액순환을 방해하는 원인을 찾아 개선시켜주는데 초점을 맞춘다.

소화기능이 떨어지면서, 심장기능이 약하기 쉬운 소음인은 홍삼이나 생강차를 지속적으로 먹는다면 수족냉증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체열이 높으면서 열이 골고루 분산되지 않아, 스트레스로 열이 편재되기 쉬운 소양인은 소음인과 달리 기운의 울체를 풀어주는 시호나 지실, 작약 등의 약재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수족냉증은 자신의 체질에 맞게 접근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겨울에 방이 추운 것은 보일러에 기름이 없어서 일수도 있고, 보일러 고장이 원인일 수도 있고, 배관이 막혀서 그런 것일 수도 있는 것처럼, 정확한 원인파악이 선행돼야 한다. 체질에 대한 고려 없이 홍삼과 녹용이 몸을 따뜻하게 한다고 무조건 먹는다면 오히려 체열의 편재가 더욱 심해져 두통, 가슴 답답함, 불면, 안구 충혈, 피부알레르기 등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수족냉증은 병리학적으로 두통, 호흡기질환, 소화기질환, 생리통, 생식기질환, 골관절질환과 같이 동반되기 쉽다. 때문에 수족냉증 하나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수족냉증을 앓고 있다면 갑상선질환, 저혈압, 심장질환의 유무를 확인해 다각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또한 수족냉증은 알코올섭취, 고함량의 카페인음료, 극심한 스트레스, 추운 환경의 반복된 노출로 악화되기 쉬우므로 자신의 일상에 악화요인이 없는지 돌아보고, 반드시 생활습관과 환경을 개선해야만 한다. 사람과 사람이 손을 잡은 모습은 가을단풍만큼이나 아름답다. 마주한 두 손에 그리움과 간절함, 반가움이 교차할 때 특히나 그렇다. 손길을 내밀 때 자신의 차가운 손이 걱정되어 주저하는 이가 있다면, 한약으로 근본적 치료를 시도해 볼 것을 권해본다. 김정수 원광한약국 한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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