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연 문학평론가
박수연 문학평론가
허수경은, 1962년생이고, 1987년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1992년에 한국을 떠났고, 2018년 엊그제 더 먼 세상으로 떠났다. 삼십년을 한국에서 살았고, 이십 몇 년을 외국에서 살며 고대근동 유물 발굴을 업으로 삼았었던 그가 마지막 시집에서 자신의 목적지라고 밝힌 것은 어느 기차역 노숙자가 읽던 `불가능에게로`라는 시집이었다.

다음은 그가 한국을 떠나기 전 간행한 시집에 수록된 시이다.

저녁 환한 저녁/문자도 없이 문서도 없이/멸(滅)조차 적적한 곳으로/화엄도 도솔도 없이 문명의 바깥으로/무망 속으로/환하게 (백수광부 중에서)

`환한 저녁에 환하게` 라고 썼지만, 허수경이라는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것은 어떤 처연한 삶을 압축한 장면이다. 허수경의 시는 대부분 비극을 끌어안은 영혼의 만가(挽歌)이다. 그것은 시이기 때문에 아름답지만 현실이기 때문에 비극일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가령, 강물 속으로 들어간 `백수광부`를 보고 울다 따라 들어가는 여인의 몸부림은 참담하지만, 그것을 공후로 연주해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여옥의 곡조는 참담함에 아름다움을 덧붙여놓는 것이다.

첫 시집 제목이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였던 것은 그의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환하다`라고 적은 것은 환하다가 아니라 `캄캄하다`라고 읽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허수경은, 몸소 그가 태어난 땅을 떠나면서 그것을 소멸이라는 말조차 의미 없는 것이 되는 문명 바깥으로 가는 행보라고 적었지만, 그도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일이, 환하지 않고 캄캄하게 두려웠다고 지금 여기에 적어둔다. 독일에서 고고학을 전공하고 터키 시리아 인근에서 고대문화 발굴에 집중했던 그는 아마 잊혀진 삶을 찾아내는 일로써 그 잊힘의 아픔을 이겨내려 했을 것이다. 1988년에 간행된 첫 번째 시집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를 2010년에 재간행 했을 때 그는 시집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먼 나날 가운데 절 잊지 않고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없었더라면 전 이 세계의 고아로 어느 거리에서 사라졌을 겁니다.`

이말, 기억해주어 고맙다는 말은 그가 말 못할 그리움에 사무쳤다는 사실을 뜻한다. 올해 간행된 산문집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도 2003년에 나왔던 그의 책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개정하여 낸 것인데, 거기에서 그는 사무친 그리움을 고백하고 있었다. 그의 `혼자 가는 먼 집`은 그를 혼자 두지 않을 먼 집이었음이 틀림없다고 우리는 아프게 생각한다.

고대 중동의 삶을 발굴하는 일을 두고 허수경은 그 시절의 산문에서 `무덤을 방문하는 자에게 무덤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쓴 적이 있다. 이제 시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무덤이 되어서 우리 앞에 있게 됐다. 자신을 불우한 악기라고 불렀던 시인은 그 침묵으로 우리를 불러서 모두 시인 자신과 동일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말(言)의 사원(寺)인 시(詩)에서는 모두 분별없을 환한 세상을 꿈꾸기 마련이다. `모든 악기는 자신의 불우를 다해/노래하는 것`이라고 쓴 시인에게 이제 우리는 그 불우의 지복을 누리면서 진실로 환하게 저승의 강물을 건너는 중이기를 바라고 바랄뿐.

남아있는 목숨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그를 끝내 기억해주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시집 제목을 출간 순서대로 여기에 적어둔다.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1988), `혼자 가는 먼 집`(1992),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2001),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2005),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2011),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2016)

박수연(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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