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도 잴 수 있나?"

내가 연구원에서 하는 일이 빛의 밝기를 측정하는 것이라 하니 동생이 던진 질문이다.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냥 웃어넘길 주제는 아닌 듯하다.

우리는 눈빛이 밝거나 어둡거나 맑거나 흐리거나 등의 말을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빛이란 전구에 불이 켜지는 것과 같은 빛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눈을 통해 전달되는 상태나 느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일상에서 흔하게 사용된다는 것은 비록 눈빛의 실체는 불분명해도 사람들이 그 말을 들었을 때 공감하는 바가 있다는 뜻이다.

고대 유럽 문화권에서는 오랫동안 눈에서 정말 빛이 나와서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빛의 실체와 눈의 작동원리에 대한 현재 우리의 지식은 `광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집트의 학자 이븐 알하이삼부터 시작해서 약 1000년 동안 연구 결과이다.

이렇게 잘 정립된 광학 이론에 따르면 눈은 빛을 검출하는 기관이지 빛을 발생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니므로 `눈빛`이라는 단어는 과학계에서 받아들여 질 수 없었다. 따라서 `눈빛 측정`이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식은 언제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눈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충분히 분석하고 연구해서 이제 인공눈까지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하던 중 최근에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그동안 눈의 망막에서 빛에 반응하는 센서에 해당하는 광수용체는 어두운 영역에서 밝기에만 반응하는 `막대세포`와 밝은 영역에서 색을 감지하는 세 종류의 `원뿔세포` 만 알려져 있었다. 2002년 미국 브라운대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베르슨 교수는 여기에 추가적인 광수용체가 존재한다고 발표했고 이를 `감광신경절세포(ipRGC)`라고 이름 붙였다. 이 새로운 광수용체는 사람이 사물을 보는데 기여하지는 않고 뜻밖에도 외부의 빛의 자극에 따라 몸의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최근에는 빛이 감광신경절세포를 통해서 생체리듬뿐만 아니라 기분과 집중력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도 나오고 있어 빛으로 불면증이나 우울증을 치료하려는 연구까지 진행되고 있다.

눈이 어떻게 보는가를 연구한지 천 년이 지나서야 결국 눈이 보는 것 외에도 하는 역할이 있음을 알아낸 것이다. 어두우면 잠이 오고 밝아지면 정신을 차리는 현상과 야간 근무나 장거리 여행에 수면 장애가 따르는 일상 속 경험이 바로 빛이 눈을 통해서 미치는 보이지 않는 영향 때문이었다. 이러한 발견에는 기존 관념을 깨는 발상의 전환과 서로 다른 학문분야의 소통과 융합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광학 연구자는 눈의 기능을 카메라와 디스플레이의 역할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힘들었지만, 생물학과 생리학 연구자는 생체리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추적해 갔고 결국 눈의 망막에서 새로운 기능성 세포를 발견하게 됐다. 알만한 것은 다 알았고 이제 어떻게 응용하는 문제만 남았다는 식으로 섣불리 오만하거나 자기 전공에 매몰돼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리기 쉬운 과학자들을 일깨워 주는 좋은 사례이다.

이런 맥락에서 농담처럼 나온 눈빛 측정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눈빛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광학 전공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눈을 통해서 사람의 감정이나 심리 상태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비슷한 표현으로 `낯빛`도 있으니 종합적인 얼굴영상 분석과 접목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궁극적으로 눈빛 측정이 새로운 의학 진단이나 심리 분석의 방법으로 발전할 수도 있지 않을까?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새로운 지식의 발견은 파급 효과가 큰 만큼 성공 확률은 적을 수밖에 없다. 엉뚱하거나 평범한 주제라도 열린 마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며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가는 연구자의 도전이 씨라면 그런 연구자를 믿고 기다려 주는 토양에서 싹을 틔워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이동훈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광학표준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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