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얘기부터 해야겠다. 미국의 권위 있는 잡지인 `타임`지는 2018년 노벨상 수상 후보 1순위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꼽았었다.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을 몰고 온 양 정상의 노력이 돋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남북 정상의 노벨상 수상을 은근히 기대했으나 꿈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남북평화의 희망은 살아있으니 다행이다. 모든 상이 그렇듯 노벨상도 상 자체보다는 상과 관련된 사안의 본질이 어떠한지가 중요하다.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여사는 199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최근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족을 학살하는 등 인권을 무시하는 조치를 일삼자 수지 여사의 노벨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인권의 상징인 수지 여사가 인권문제로 비난을 받는 건 슬픈 아이러니다.

문득 문재인 대통령이 떠오른다. 문 대통령의 통치력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가 `촛불혁명` 당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떨어지고 말았다. 부정 평가의 주된 이유는 `경제·민생 해결 부족`이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대통령이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한 데서 보듯 인사문제도 부정 평가에 더해진다. 문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국정지지도는 남북정상회담 등으로 꽤 올랐다. 하지만 국정의 여타 분야에서 `희망`을 찾아보기 힘든 게 문제 아닌가.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도 대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3천 곳이 넘는 실정이다. 이들 3곳 가운데 1곳 가량은 7년 이상의 `만성` 한계기업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7.8배에 달한다. 기업과 가계가 힘을 쓰지 못하니 내수가 잘 될 리 없고, 경제성장도 기대난망이다. 정부가 국정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던 일자리 만들기는 거론하기 민망할 정도다. 정부가 나름 `선한 정책`으로 표방한 최저임금 인상은 디테일에서 부실이 많아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경제적 약자를 위한다는 정책이 되레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 영세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의 불평과 불만, 불복종 운동을 야기하고 있다.

정부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또 있다. 고삐 풀린 서울 집값이다. 강남 뿐 아니라 강북까지 서울 전체가 부동산 투기판이 돼가고 있다. 급기야 정부는 신도시 카드를 꺼내들었다. 신도시가 서울과 신도시간 교통지옥을 만들어온 교훈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일부에선 신도시 교통인프라 확충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런다고 문제가 풀릴까. 거의 모든 분야의 인프라가 지방에 비해 잘 갖춰진 서울로의 이동행렬을 막을 수 있을까. 답은 지방발전이다. 국토를 골고루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 지방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을 동시에 높이는 것이다. 서울 집값 상승의 문제는 단순히 부동산 문제가 아니다. 지방자치와 지방분권, 경제의 문제 등과 연동돼있다.

결국은 정치의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할 때 경제도 살리고 지방도 살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잇단 자질 논란을 빚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임명을 강행한 것은 대통령의 정치력을 약화시키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문 대통령이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한 건 이번이 6번째다. 이번 인사로 야당의 반발이 심하다. 가뜩이나 어려운 여야간 소통과 협력이 더욱 멀어졌다.

우리 앞에 놓인 산적한 국가과제를 어떻게 해쳐나갈 것인가. 우리의 고질병인 저출산-고령화는 이제 극도로 심각한 상태다. 이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사회가 되면서 생산가능인구가 유소년·고령 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부양비율도 크게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4%를 넘어서면서 `고령사회` 진입이 확정됐다. 지난해 사망 원인 중 고의적 자해(자살)가 10, 20, 30대에서 1위를 차지했다. 청년이 불행한 나라다. 정치는 종합예술이라고 한다. 모든 분야를 움직이는 힘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가의 미래를 든든히 서가게 하는 지혜와 전략을 짜내는 데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하길 바란다.

최문갑. 시사평론가·밸런스토피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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