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김윤석이야?" "역시 김윤석이야!"

영화 `암수살인`은 얼핏 보면 한국 범죄 수사 영화의 전형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형사와 범인, 선과 악이 극명히 갈리는 권선징악(勸善懲惡)형 범죄스릴러물이 떠오르는 건 역시 배우 김윤석과 형사 역의 만남 때문이리라. 2008년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를 시작으로 `거북이 달린다`, `극비수사`에 이어 이번 영화까지 김윤석이 형사 역을 맡은 것이 벌써 네 번째다. 자칫 식상해보일 수 있는 형사 역에 도전했던 김윤석은 담백하고 강렬한 연기를 펼쳐 `또 김윤석`에서 `역시 김윤석`으로 관객들의 의구심을 확신으로 바꿨다.

이 영화는 15년 형을 받고 복역 중인 살인범이 자신의 살인을 자백하고, 증거라고는 살인범의 자백밖에 없어 이 자백을 토대로 수사를 진행하는 형사의 이야기다. 지난 2012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뤘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는 살인범 강태오(주지훈)가 형사 김형민(김윤석)에게 7건의 살인을 추가로 자백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범인이 자백하는 살인은 피해자는 있지만 신고도, 시체도, 수사도 없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살인, 즉 암수살인이다. 영화는 형사 김형민이 살인범 강태오가 고백했던 암수살인을 탐문수사하면서 형사와 범인 구도로 시작됐다가 점차 강태오의 자백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밝히려는 두뇌싸움으로 옮겨 간다.

이러한 두뇌싸움은 영화 중반까지만 해도 강태오가 우위를 점한 것처럼 보인다. 강태오가 학창시절 학업 성적이 썩 우수했던 점과 교도소 안에서 각종 법률을 공부하는 장면은 강태오의 말이 모두 허구였다는 쪽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옮기기에 충분하다. 그러던 중 형사 김형민이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며 기울었던 대결 구도는 다시금 균형을 이루고, 사비까지 털어가며 사건해결에 매달린 끝에 결국 불확실했던 사건 조각들을 하나로 맞추는 데 성공한다.

영화 암수살인은 형사 김형민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었기에 빛날 수 있었다. 그가 15년 형을 받고 이미 철장에 갇혀서 복역하고 있는 범인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단 하나, 범인 강태오가 두 번 다시 세상에 발붙이지 못 하도록 여죄를 밝히기 위함이다. 죄질이 나쁜 살인범이 다시 사회로 나와 재범을 저지르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영화는 보는 내내 관객들로 하여금 공소시효와 판사가 내리는 형량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접견실에서 펼치는 김윤석과 주지훈의 연기대결도 영화의 매력 포인트다. 추격자, 남한산성 등에서 걸출한 연기를 보여줬던 김윤석은 이번 영화에서 새로운 형사 캐릭터를 연기한다. 새로운 사건을 맡아 실적을 올리는 것이 아닌 오래된 사건을 찾아 파헤치는 김형민은 경찰 조직 내에서도 골칫거리로 전락해 동료들에게 외면 받는다. 이렇다 할 수사실적을 올리지 못한 김형민은 결국 파출소 순경으로 강등까지 당하지만, 진실을 밝혀 망자와 유족의 한을 풀기위한 그의 집념은 멈추지 않는다. 추격자나 거북이 달린다에서 보여줬던 분노나 복수심에 찬 형사와는 달리, 형사 김형민은 철저히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피해자가 느꼈을 고통과 감정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 감동을 자아낸다.

김태균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5년 동안 사건의 실제 형사를 인터뷰하고 현장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실제 영화를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무리한 설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건조하고 담백하지만, 실제 수사 현장을 보고 있는 것처럼 재현 수준이 높다.

영화 암수살인은 실제 살인사건의 피해자 유족들이 `유족의 동의 없는 상영`이라며 상영금지 소송을 제기해서 개봉 전부터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후 유족이 제작사의 사과를 받아들여 상영금지 소송을 취하하면서 이 영화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원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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