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이란 책에 `지성(至誠)이면 예지(豫知)할 수가 있다`는 구절이 나온다. 즉 `국가가 장차 흥왕할 때는 반드시 상서로운 조짐이 있고, 나라가 망할 때도 반드시 흉한 조짐이 있다. 역점(易占)과 거북점에 보이고, 주위의 사체(四體)에도 나타난다`는 글이 있다. 일마다 반드시 그 조짐이 있다는 이야기다.

조짐이 주위의 사체에 나타난다는 것은 천문과 지리와 동물과 사람에게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비가 내리려면 구름이 모이고, 지진이 날 때는 두꺼비가 이동한다. 율곡 선생이 10만 양병을 주장한 것은 천문을 보았기 때문이고, 탄허 스님이 6·25 사변을 미리 안 것은 개미들의 대량살상을 보고 지기(地氣)를 예지한 것이다.

<대학>에는 `그 뜻이 지성(至誠)하려면, 먼저 치지(致知)해야 하고, 치지는 격물(格物)에 있다. 격물한 이후에 치지하고, 치지한 이후에 지성이 된다`는 구절이 있고, 이어서 `지성이 된 이후에 정심(正心)이 되고, 정심이 된 이후에 수신(修身)하고, 제가(齊家)하고, 치국(治國)하고, 평천하(平天下)가 가능하다`고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짐을 미리 알고 싶다. 그래서 예로부터 각종 예지학(豫知學)이 발전하여 왔고, 지금도 성행하고 있다. 예지학이 근거 없는 미신이라면, 율곡 선생의 10만 양병설과 탄허 스님의 피난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미래를 미리 아는 기술은 올바른 판단을 할 줄 아는 이성(理性)과 집중된 지성(至誠)을 전제로 한다고 한다. 주역으로 예지하는 역점(易占)은 이성에 따른 이분법과 지성으로 조작하는 작괘(作卦) 행위를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공자는 `군자만이 예지할 수 있다`고 했다.

점(占)이란 근거가 없으니 미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대인의 통념이다. 그러나 공자와 그를 따르는 유가는 점책인 <주역>을 사서삼경의 으뜸으로 삼았었고, 우리 조선 500년 동안에도 가장 존중받았던 책은 <주역>이었다면, 한 번쯤 그 내용을 일별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요즘은 인터넷이 주요 정보원이다. 젊은이들이 알고 싶은 것은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어른들의 경험이 필요없고, 서점에는 책이 팔리지 않는다. 학교의 수업도 인터넷으로 대체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동영상 강의를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학문(學問)은 체계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단편적인 지식으로 구축되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으로 아는 지식은 그저 상식(常識)의 창고에 그칠 뿐이다. 지식이 체계를 이루고 거기에 선생(先生)의 경험과 지혜가 보태져야 비로소 유용한 학문이 성립한다.

<주역>도 정독을 통하여 64괘의 내용을 명백하게 이해한 연후에, 다시 지성(至誠)으로 작괘하여야 비로소 예지가 가능한 학문이다. 유불선(儒佛仙)에 해박한 탄허스님은 <주역>을 500독(讀)하여 그 이치를 통달했다고 하며, 옛날 율곡 선생은 모친을 여의고 절에서 <능엄경>을 1000독하고 불교를 통달했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가 들으면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다. <주역>을 애독한 독일인이 많은데, `칼 구스타프 융`도 그런 사람이다. 그는 중국에서 10여 년간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주역을 배운 `헬무트 빌헤름`에게서 주역강의를 듣고, 역점을 정신병치료에 활용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는 치료가 어려운 환자를 <주역> 64괘로 판단하여 치료하기는 했으나, `역점이 왜 적중하느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수년간 궁리한 끝에 나온 설명이 `인과(因果)의 동시성(同時性)`이라는 주장이다.

인과는 선인후과(先因後果)라고 설명하던 당시에 그의 동시성이론은 외면당했다고 한다. 공자는 "역(易)은 무사(無思)하고 무위(無爲)하여, 고요하여 부동하므로, 일단 감응(感應)하면 천하의 사물을 통달한다"고 설명하면서, 무사(無思)에서 지성(至誠)으로 감응하여야 예견할 수 있다고 했다.

"점칠 때는 반드시 복채를 놓아야 맞다"는 속담이 있다. 돈을 내면 본전 생각이 나서 정성껏 괘를 뽑으니, 저절로 지성(至誠)이 된다는 이야기다. 가끔 `주역 이치를 알면 점치지 않고도 안다`는 말을 인용하는데, 평소에도 항상 지성(至誠)인 군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다만 꿈이 적중하는 사람은 주역점이 필요가 없고, 귀신들린 무당도 흔히 예지하지만 귀신이 떠나가면 점쳐야 안다.

황정원(한국해양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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