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 사회생활·업무 지장 안 줘

`분주히 쫓아다니며 이익을 추구한다`는 분추경리(奔趨競利)란 말이 있다. 줄여서 분경(奔競)이라 불린다. 이는 벼슬이나 권세가 높은 관리의 집을 드나들며 벼슬을 얻거나 더 좋은 관직으로 나아가기 위해 뇌물을 바치고 인사문제를 청탁하는 행위를 말한다. 나중엔 분경금지법(奔競禁止法)으로까지 발전했다. 이 법은 고려시대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고려 명종이 내린 교서(고려사)에서는 "요사이 분경이 극심해 권력이 사사로운 집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분경금지법이 강력하게 적용되기 시작한 때는 조선시대였다. 정종이 정권안정 차원에서 대소관리들이 사적으로 만나는 일(사알)을 금지하는 교지를 처음으로 내렸고, 이를 태종이 시행했다. 태종 때는 관리가 친가·외가의 5촌 밖에 있는 사람을 집에서 사사로이 만나면 신문도 하지않고 바로 파직하고 귀양을 보냈다. 성종 때는 분경금지법을 헌법격인 경국대전에 명문화하기에 이르렀다. 경국대전에는 상급관리의 집을 방문해 엽관운동을 하는 자는 곤장 100대를 가해 3000리 밖으로 유배시켰다. 곤장 100대면 사형에 가까운 징계고, 유형 3000리는 사실상 조선땅에서 살 수 없게 만든 형벌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관리가 뇌물을 받거나 횡령을 저지르면 장오죄(贓汚罪)를 적용해 엄격하게 처벌했다. 부패한 관리의 명단을 따로 기록해 본인은 물론 아들과 손자까지도 벼슬길에 나가는 길을 막거나 제한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에 줄을 대려는 행위는 끊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와 조선시대 뿐 아니라 근래에 들어서서도 공직자 및 공공기관의 부정부패를 끊기위해 노력해 오고 있지만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02년부터 시행한 부패방지법은 청렴한 공직 및 사회풍토 조성에 어느 정도 이바지했지만 권력형 부패문제나 공무원의 뇌물수수·횡령 등의 구조적 문제를 근절하는 데에는 미흡했다. 부패행위 신고와 처리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효과가 미미했다. 이런 때문에 2016년 9월 급기야 실체법인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시행에 들어갔다.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청탁금지법은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임직원, 학교 교직원 등이 일정 규모 이상(식사대접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으면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처벌토록 했다. 법 시행 2년의 성과는 흡족했다. 국민과 공직자, 영향을 받는 종사자 등 3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대 다수가 청탁금지법 시행에 찬성하고 이 법이 잘 정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행인 것은 청탁금지법이 정상적인 사회생활과 업무수행시 지장을 주지 않다고 했다. 특이한 점은 법 시행 후 부자연스럽게 여긴 `각자내기, 소위 더치페이`가 편해지고 한층 자연스러워졌다. 무엇보다 당초 법 제정 취지에 맞게 부조리한 관행이나 부패문제 개선을 가져왔다.

법 시행 후 각급 공공기관에서도 청탁금지법은 잘 지켜졌다. 2016년 9월부터 작년 말까지 2만 4757개 공공기관에 접수된 신고 처리현황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 부정청탁 신고가 435건, 금품 수수가 967건, 외부강의 관련 신고가 4196건 등 총 5599건이 접수됐다. 징계대상에 해당하는 외부강의 미신고를 제외하고 형사처벌, 과태료 부과 대상 신고 1503건 중 83건에 대해서는 과태료, 형사처벌 등의 제재가 이뤄졌다. 수사나 재판 중인 신고사건도 170건에 달한다. 이는 법 시행 전보다 현격하게 줄어든 규모라는 게 권익위의 설명이다. 갈수록 은밀해지는 법 위반 행위를 효과적으로 적발하기 위해서는 부패신고자 보호와 신고 포상금을 적극적으로 지급하고 내부 신고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 국민은 공직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청렴을 기대하고 있다.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우리 사회에 변화를 몰고 온 반부패·청렴이 일상생활에서 실천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분경하지 않아도 의식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관행도 바뀌며, 궁극적으로는 문화가 바뀌는 것은 자명하다. 곽상훈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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