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외가인 공주시 소학동에 가면 외할머니는 동네 전설을 곧 잘 들려 주셨다. 동네에는 천년 넘은 고목과 향덕(向德)비 그리고 용(龍)못이라고 불리는 연못이 하나 있었다.

천년이 되는 날 이무기는 `아무도 모르게` 산의 정상으로 올라야 용으로 변해 승천할 수 있었다. 새벽에 산에 오르던 뱀은 그만 동네 사람에게 몸을 보여서 몸이 녹아 흘러내려 연못이 되었단다. 필자가 어렸을 때에는 그 용 못에는 구렁이를 닮은 시커멓고 커다란 가물치가 많이 살고 있어 용이 못된 뱀의 새끼들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 용 못과 가까이 서 있는 향덕비는 신라 경덕왕 때 효자 향덕에게 내린 비석이다. 역병(疫病), 즉, 전염병이 창궐하자 향덕 어머니도 역병에 걸렸다. 욕창이 나서 온 몸에 피고름이 고였다. 향덕은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고 모든 약제를 써봤지만 어머님의 병은 차도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옛 날 이야기에 늘 등장하는 스님 한 분이 이 이야기에도 어김없이 등장해서 솔루션을 주셨단다. "역병은 고기를 먹어야 낫는다!"

한 겨울에 많은 눈이 내려 고기를 구할 수 없자 향덕은 제 허벅지 살을 베어내어 냇물에서 씻었단다. 마침 원님이 냇물에 핏물이 내려오는 것을 보게 되었고, 이유를 추적하자 지극한 효성이 밝혀졌다. 나라에서 향덕에게 상과 비석을 내렸단다. 사실 허벅지 살을 한 근(=600 g) 정도 베어내면 사람이 죽을 수 있다. 실제로는 용 못에서 가물치를 잡아 손질했거나 동물을 잡아 손질했겠지만, 전설로 전해오면서 약간의 허풍도 들어갔을 것이다.

전염병에 대한 기록은 오래되었다. 성경에도 등장한다. 우리나라 전염병 역사도 오래되었다. 향덕 이야기처럼 삼국사기에서 "가뭄이 들어 역병이 창궐했다"는 표현이 자주 나오며,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수십 회의 역병 기록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 전쟁이 있는 곳, 흉년이 들어 면역이 떨어진 해에 넓게 퍼지고 대규모의 인명피해가 발생한다.

유럽의 대표적인 전염병인 흑사병도 크고 작게 100 여 차례나 휩쓸고 다녔다. 병이 창궐하면 이방인, 집시, 거지, 유대인, 한센병자가 이 병을 몰고 다닌다고 소문이 돌아서 사람들은 이들을 집단 폭행하고 내쫓거나 죽이기도 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개와 고양이가 옮긴다고 생각해서 개와 고양이를 마구 죽였다. 고양이 없는 세상이 되자 쥐의 숫자가 늘어나서 쥐벼룩으로 인해 흑사병은 더 활개를 쳤다. 무지는 공포를, 공포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지난주 눈여겨 볼 뉴스로 "올해 들어 처음으로 메르스 중동호흡기 증후군 환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있었다. 모두가 화들짝 놀란 소식이었다. 그 파괴력과 정신적 피해가 매우 크다는 것을 모두 경험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추석명절이 오기 전에 환자와 접촉한 많은 사람들이 음성으로 판정되어 모두가 안심하게 되었다.

고향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동물의 축사나 취약할 수 있는 곳에 가까이 가는 일은 삼가 주어야 할 것이다. 잘못하면 현대의 역병 때문에 여러 동물들이 죽을 수도,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병은 정말 "아무도 모르게" 찾아오고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추석은 한해 곡식의 추수를 기념하는 우리만의 축제다. `물질의 풍요`를 누리면서 자칫 놓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서로를 아껴주는 `배려의 풍요`이다. 그것이 없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마음은 역병이 들어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특히 많은 여성들의 마음에는 명절에 역병이 잘 들어온다.

무한 배려가 필요하다. 나 좋겠다고 남 귀찮은 일 혹은 병들게 할 말은 아닌지 꼼꼼히 생각해 볼 일이다. 동네의 누가 효자라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효심은 저절로 해야지 절대 강요해서도 안 될 일이다. 첫째도 배려, 둘째도 배려, 셋째도 배려로 배려 가득한 고향과 가족 축제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임현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의과학산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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