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수 관장
임영수 관장
딱지놀이는 두 가지가 있다. 둥근 종이에 별과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림 딱지와 종이를 접어 전면에 `X`자 모양이 되는 사각 딱지다. 사각딱지는 상대방 딱지를 냅다 때려 상대방 것이 넘어가야 먹는 딱지치기놀이다. 즉, 그림딱지는 `딱지놀이`이고 접은 딱지는 `딱지치기놀이`이다. 여기서는 그림딱지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림딱지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36년이다. 일제치하에서 일본은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들려고 무척 애를 썼다. 학교에서 일본 선생은 칼을 차고 교실에 들어와 수업을 했다.

`오늘부터는 조선어를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명목 하에 `조선어` 책자를 모두 걷어 불태웠다. 조선말과 글을 못 쓰도록 금지령을 내리고 조선인은 모두 일본말과 글을 써야 했다. 만약 조선말과 글을 쓰면 선생은 차고 있던 칼집으로 머리에서 피가 흐르도록 때렸기 때문에 학생들은 감히 수업시간에 조선말을 사용하지 못했다.

일본 선생에게는 수업이 끝나고 난 뒤가 고민이었다. 수업시간에는 칼로 위협했지만 집에까지 쫓아가 감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해준 것이 바로 `멘코(面子)` 즉 딱지이다. 이를 일본에서는 방언으로 `팟찐(パトチン)`이라 부른다.

일본선생은 아이들에게 딱지를 20장씩 나눠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부터 너희들이 언제 어디서나 조선말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만약 누군가 조선말을 하면 딱지를 한 장씩 뺏어 와라."

일주일 후에 딱지 검사를 했고 딱지 20장을 모두 빼앗긴 아이는 사정 없이 맞았다. 아이들은 딱지를 빼앗기지 않고 일본선생에게 매를 맞지 않으려면 일본말만 사용했고 아니면 상대방에게 조선말을 하게 유도한 다음 딱지를 뺏어 와야 했다. 그래서 조선말과 글이 빨리 사라지게 됐다.

반면 해방이 된 뒤에는 한국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딱지를 나눠줬다. 물론 딱지의 그림이 일본의 사무라이에서 한국의 국군 그림으로 바뀌었고 이때 딱지를 빼앗아 와야 하는 규칙은 이전과는 반대로 상대방이 일본말과 글을 쓰면 한 장씩 빼앗아올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딱지 때문에 우리말과 글이 빨리 돌아오기도 했다.

딱지는 이러한 방식으로 일본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일본에서는 딱지놀이가 18세기에 시작됐다. 멘코라 불리는 일본 딱지는 얼굴을 그린 거푸집에 찰흙을 넣어 구운 데서 이름이 유래됐다. 처음에는 납이나 찰흙으로 만들다가 지금처럼 종이로 만든 멘코는 1898년에 판매되기 시작해 1904년에는 일본에서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됐다. 1936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딱지에는 일본의 군인 즉 사무라이 그림이 인쇄돼 있다. 1941년 일본은 대동아전쟁을 일으키면서 우리의 말과 글 그리고 문화까지 말살시키는 데 딱지를 이용한 것이다.

해방 후 우리나라 정서에 맞는 딱지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이것은 엄연히 일본에서 건너온 일본 딱지놀이의 잔재다. 임영수 연기향토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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