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남·북 정상회담 성과가 담긴 `9.19 평양공동선언`은 묘한 뒷맛을 남긴다. 일견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 남북 철도·도로 연결, 이산가족 면회소, 동창리 시험장·발사대 폐기, 영변 핵시설 조건부 폐기 용의,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방문 등 풍성한 메뉴들이 담겨 푸짐해 보인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별로 먹을거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외화내빈이다. 정작 이번 회담에서 거뒀어야 할 성과는 북한 비핵화에서의 실질적·가시적 진전이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사활적 사안이다. 비핵화를 뺀 나머지 사안들에서의 합의는 주변적이고 부차적인 곁가지들에 불과하다. 고작 `비핵화`란 단어를 김정은의 육성으로 들었다는 것이 성과로 거론될 정도다.

`세기의` 회담으로 불리던 6.12 미·북 정상회담과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북한 비핵화에서 아무런 실질적 진전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비핵화가 교착상태에 빠진 이유는 북한이 이 문제에서 `묘수`를 찾으려 들기 때문이다. 비핵화에는 왕도가 없다. 비핵화는 `핵무기/핵물질/핵시설의 신고 → 폐기 → 검증의 3단계`를 따라야 한다. 다른 우회로나 지름길이나 기상천외한 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보다는 오히려 우리에게 닥칠 가능성이 높은 문제점들을 짚어보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첫째, 한·미 갈등에 대한 우려다. 미 국무부는 3차 남북회담 직전까지, 회담 결과로 "비핵화를 향한 의미있고 검증가능한 조치들"이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과연 `평양선언`이 그러한 기준에 충족될지 여부는 분명해 보인다. 최근 들어 워싱턴 조야에서는 "북한 비핵화를 추월하는 남북관계의 과속"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향후 이 점에 유념하지 않으면 한·미관계에서의 갈등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둘째, 비핵화와 역행하는 북한의 행동이다. 미 정보당국은 `비핵화`를 하겠다던 북한이 금년에만 5-8개의 핵무기를 생산한 것으로 판단한다. 2020년이 되면 그 숫자가 140-150개에 이를 것이다. 그런가 하면 평양 인근 산음리와 황해북도 갈골에서 미 대륙을 타격할 수 있는 화성-15호 대륙간탄도탄을 비롯한 탄도미사일 개발과 생산을 지속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약속에서 도무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러한 언행불일치의 표리부동 때문일 것이다.

셋째, `선물의 역설`이다. 예일대 교수 왈드포겔(J. Waldfogel)이 발표한 "크리스마스의 후생손실(The deadweight loss of Christmas)"이란 논문에 의하면, 선물을 받은 사람이 선물에 부여하는 가치는 선물을 준 사람이 지불한 가치보다 10%-25%가 줄어든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선물이 처음에는 고마움의 대상일지 몰라도, 그것이 반복되면 수혜자가 선물을 주지 않는 것에 불만을 나타낼 수 있다는 점이다. 선물이 빚이 되는 셈이다. 우리는 북한에게 선의의 경제지원을 제공하려 할 때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넷째, 문재인 대통령이 기꺼이 감당하려는 `정직한 중재자(honest broker)` 역할에 수반되는 위험성이다. 비유하자면,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에서 국제사회의 신용불량자 격인 북한을 무한정 신뢰하며, 무보증·무담보로 무제한 연대보증을 떠맡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을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를 넘어 "다정한 연인"으로 호칭한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 중에서 김정은을 `연인`으로 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다.

다섯째, 남북관계에서 초래될 수 있는 안보외부효과(security externalities)의 잠재적 문제점이다. 이 효과는 일국의 경제활동이 국가안보에 영향을 주게 됨을 뜻한다. 경제발전은 군비증강으로 직결될 수 있다. 일례로, 미·중간 갈등이 고조된 시점은 중국의 경제성장이 임계점을 넘어 폭발적 군사력 증강으로 연결된 시점과 일치한다. 이는 대북 경협이나 지원 등으로 성장한 북한의 국력이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우리의 생존을 더욱 위협할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한다.

끝으로 안보위협의 `가역성(reversibility)`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모든 전쟁위협을 없애기로 합의"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탈 사례에서 보듯, NATO를 비롯한 서방국들이 러시아의 공세에 지리멸렬했던 것은 `위협의 가역성`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 냉전 종식과 더불어, 서방세계는 "소련(러시아)의 사망"을 확신하고, 군사력과 국방비를 줄이는 `평화배당금` 잔치를 벌였다. 러시아의 위협이 되돌아 올 가능성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9.19 평양공동선언`에 부분적으로는 희망적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은 희망과 기대보다는 불안감과 의구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문 대통령 일행을 환영하기 위해 동원된 10만 평양시민들의 손에 태극기는 안 보이고, 인공기와 한반도기만 들려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 내외의 공항영접과 오픈카 퍼레이드 같은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환대에서 빈약한 회담결과를 은폐해 보려는 의도가 읽혀진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 `노동신문`의 어느 구석에도 `비핵화`의 `비읍`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마침 이번 방북단에 마술가(최현우) 한 명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혹시 북한이 그에게 "핵폭탄 안 보이게 하기" 마술을 부탁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송승종 대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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