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독립운동 유적지를 가다] ③당진 소난지도, 면천공립보통학교, 대호지·정미면

대호지면과 정미면 일원에서 4.4독립만세 운동을 재현한 모습. 사진 = 당진시 제공
대호지면과 정미면 일원에서 4.4독립만세 운동을 재현한 모습. 사진 = 당진시 제공
당진시는 일제강점기인 1910년 전인 1906년부터 의병활동이 전개된 곳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우리나라 최초 학생주도의 3.10만세 운동이 일어났으며 이후 당진지역 최대 독립운동인 4.4독립만세 운동이 벌어졌다. 100여 년 전 충절의 고장 당진에선 난세의 이름 모를 영웅들이 독립에 대한 염원을 외치고 있었다.

◇내포지역 의병의 중심, 소난지도 의병항쟁=소난지도는 조선시대부터 삼남지방의 조세선 기항지 역할을 했던 곳으로, 내륙으로 이어진 수로를 이용해 주재소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는 등 충남 내포지역 의병운동의 중심지였으며, 1908년 3월 15일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소난지도의 의병활동은 크게 1906년과 1907년으로 구분된다. 1906년에는 당진 면천 출신인 최구현 의병장을 중심으로 면천성을 공격했던 사건이 있었으며, 1907년에는 정미조약에 의한 군대 강제해산 이후 홍원식 의병장이 활약했다.

특히 1908년 3월 15일 당진지역 의병운동의 근거지를 소난지도로 판단한 홍성경찰분서가 이곳에 기습공격을 감행해 홍원식 의병대는 격렬한 전투 끝에 41명이 전사하고 50여 명이 행방불명 됐다.

이들의 항거는 이후 구전으로만 전해오다가 1970년대 석문중학교 교사와 학생들의 힘으로 고증작업이 이뤄졌으며, 2003년 당진시가 소난지도 의병 항쟁 학술고증에 나서면서 비로소 실체가 확인됐다.

◇학생이 주도한 최초의 3.10 독립만세 운동=1919년 3월 10일 우리나라 최초 학생 주도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16세 였던 면천보통학교 4학년 원용은 학생이 3.1운동을 목격하고 당진으로 내려와 동급생 박창신, 4학년 급장 이종원과 함께 면천면 동문 밖 저수지부터 독립만세를 외치며 면천보통학교 교문까지 행진했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3월 10일, 4개 학년 90여 명을 인솔하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시가행진을 하며 독립 만세를 고창했다. 주동자인 원용은과 박창신은 일제 경찰에 체포당했고, 결국 퇴학당했다.

면천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의 3.10만세 운동은 당진 지역에서 최초로 전개된 만세 운동일 뿐만 아니라 충청남도 지역 학생 만세 운동 중 처음 전개된 것이어서 그 역사적 의미가 크다. 이와 같이 3·10 면천 공립 보통학교 독립만세운동은 순수한 학생들이 주도하여 전개되었고 주변 지역 3·1 운동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당진지역 최대 독립만세 운동인 대호지·정미 4.4독립만세 운동의 시발이 되었으며 2008년 면천보통학교 3.10독립만세운동 기념사업회가 발족돼 매년 3월 10일 경 만세운동 재현행사가 열리고 있다.

◇전국 최초의 민관합동 항일 대호지·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대호지정미 4.4만세운동은 대호지면에서 남주원, 이인정, 송재만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만세운동으로 전국 최초의 민·관합동 항일운동이다.

1919년 4월 4일 9시 대호지면 광장에 600여명이 모여 30자 높이의 대나무에 태극기를 게양 하고 면장 이인정의 연설에 이어 남주원의 독립선언문 낭독, 한운석이 작사한 애국가 제창이 있은 다음 행동 총책 송재만 선창의 선서 후 만세시위 행진을 시작해 천의시장으로 이어졌다.

어느새 1000여명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정미면에서 가두시위를 계속하며 당진경찰서 소속 왜경들과 대치, 4명이 부상하자 군중이 투석전으로 대응해 천의 왜경주재소가 파괴되고 많은 왜경들이 생포, 구타됐으며 4월 5일 출동한 왜경과 충돌, 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200여명이 넘게 구속됐다..

이 운동으로 현장 학살된 사람은 송봉운 등 3명, 옥중에서 고문치사 당한 사람이 이달준, 김도일 등 3명, 확인된 수형인 39명, 태형 90대 이상이 90여명에 이르는 치열한 만세운동으로 인근 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대호지·정미 4.4만세운동은 일제의 탄압으로 잊혀졌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며 말로만 전해졌다. 참가자 후손들은 관련 기록을 찾아 나섰고 경성복심법원에서 1919년 12월24일 대호지면의 독립운동가들에게 선고했던 판결문을 부산교도소에서 찾아냈다.

이 판결문은 구전되온 내용과 거의 일치했으며 비로소 4.4만세운동이 문서로 확인됨에 따라 영광의 자리에 떳떳하게 앉게 됐다.

◇그 날의 함성, 현재 진행형=소난지도 의병항쟁은 2009년 소난지도에 의병항쟁 추모탑이 건립됐으며, 2017년 6월 1일에는 이곳에서 전국 의병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소난지도 의병총은 전체면적 1626㎡ 면적에 봉분 1기와 상석 1기, 기념비 1기, 당주석 2기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2017년 10월 23일 등록문화재 제629호로 지정됐다.

당진시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7월 27일 당진시청 소회의실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특별자문위원회(이하 자문위)를 발족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정부차원에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일어났던 면천공립보통학교 3.10독립만세운동과 대호지·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던 당진에서도 관련 행사를 준비 중이다.

관련 전문가와 기념사업회 관계자, 학계, 종교계, 유족 등 다양한 분야에서 총15명으로 구성된 자문위는 앞으로 시에서 준비 중인 100주년 기념행사의 방향과 내용, 예산규모 등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자문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와는 별개로 대호지·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보존하고 후대에 선양하기 위해 성역화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100여 년 전 당진에 울려 퍼졌던 그날의 함성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차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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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에 재현한 3.10 면천공립보통학교 만세운동 모습. 사진 = 당진시 제공
2018년 3월에 재현한 3.10 면천공립보통학교 만세운동 모습. 사진 = 당진시 제공
당진시 석문면 소난지도에 위치한 의병총. 사진 = 당진시 제공
당진시 석문면 소난지도에 위치한 의병총. 사진 = 당진시 제공
4.4독립만세를 기념해 1970년 당진군에서 열린 기미독립만세 재현 모습. 사진 = 당진시 제공
4.4독립만세를 기념해 1970년 당진군에서 열린 기미독립만세 재현 모습. 사진 = 당진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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