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본 교수
김응본 교수
술이 발효되면서 우연히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식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발효식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기원전 5000년에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대추야자로 빚은 술을 발효시켜 식초를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식초의 기원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갈 수 있으나 기록(해동역사)에 따르면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식초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소금과 함께 가장 오래전부터 음식의 맛을 돋우는 조미료로 애용돼 온 식초는 그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효능으로 유명하다. 히포크라테스는 상처치료를 위한 소독약으로 식초를 사용했으며, 클레오파트라는 건강과 피부미용을 위해 식초에 진주를 녹여 마셨다고 한다. 식초는 각종 아미노산과 유기산이 풍부한 알칼리성 식품으로 체액의 균형 유지와 각종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높여준다. 이밖에도 식초에는 다양한 성분이 함유돼 있어 이를 일상생활에서 매우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 식초는 조미용이나 음료용 이외에도 건강, 미용, 청소, 주방 및 세탁에도 활용할 수 있다. 몇 가지만 소개하면 지나치게 짠 음식에 식초를 몇 방울 넣으면 짠맛이 덜해진다. 발을 씻고 마지막에 식초를 넣은 물로 헹구면 발 냄새를 없애준다. 욕실 변기 등의 불쾌한 냄새는 식초를 부은 후 뜨거운 물을 부으면 없어진다. 다림질 주름이 여러 개 생겼을 때 식초를 묻혀서 다려주면 된다. 이처럼 각 가정에서 식초의 쓰임새에는 끝이 없다.

그리고 식초는 제조방법과 성분에 따라 발효식초, 합성식초 및 기타식초로 구분된다. 발효식초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모든 나라에서 만들고 있는데, 발효식초의 원료는 식초가 제조되는 지역에서 풍부하게 생산되는 과일이나 곡물 등이 주로 사용된다. 발효식초 중에서 자연발효법으로 만들어진 식초를 천연발효식초라 한다. 곡물 등에서 추출한 주정(알코올)을 강제발효 시키거나 여기에 과일 추출물 등을 넣어 재발효시킨 것을 양조식초(주정식초)라고 한다. 한편 석유를 정제해 추출한 물질을 화학처리하면 순도 높은 초산을 얻게 되는데, 이를 물에 희석한 것을 합성식초라고 한다. 순도 높은 초산은 낮은 온도(16.6℃)에서 얼게 되는데 이를 빙초산이라 부르고, 여기서 중금속 등을 제거한 순도 99% 이상의 초산이 식용 빙초산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생로병사의 비밀` 등 매스컴을 통해 천연발효 식초가 널리 소개되면서 식초는 이제 조미료 차원을 넘어 건강음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전체 식초시장에서 마시는 식초의 비중이 2006년을 시점으로 조미용을 추월했으며 최근에는 전체 식초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천연발효 식초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탈리아의 발사믹식초, 중국(산서성)의 노진초, 일본(가고시마현)의 흑초 등이 해외여행자의 필수 구입품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들 세계적인 명품식초는 천연발효식초를 일정기간 숙성시켜 출시하고 있는데 모두 고유한 맛과 향을 차별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국내 식초업계도 흑초란 이름으로 다양한 식초제품을 시판하고 있는데, 흑초에 대한 소비자의 정확한 이해와 올바른 선택이 요구되고 있다.

흑초란 현미, 과일 등으로 술을 만들고 이를 초산발효시켜 만든 천연발효 식초를 장기 숙성하여 감칠맛과 은은하고 깊은 향을 가진 식초를 말한다. 흑초는 일반식초에 비해 아미노산, 각종 미네랄과 유기산 함량이 많고 건강효능이 우수하여 `식초의 제왕`으로 불리고 있다. 앞서 소개한 발사믹식초 등 외국의 유명식초도 그 제조방법은 일부 다르지만 흑초로 구분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조상 대대로 전승돼온 고유의 흑초 제조법을 복원하고 체계화한 장인이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전통식품명인으로 선정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흑초도 세계 유명식초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제 식초는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인 조미료만이 아니라 마시는 건강음료로, 생활 속의 만능 해결사로 그 화려한 변신이 시작됐다. 식초의 종류와 성질을 잘 알고 생활 속에서 적절히 활용한다면 우리의 삶이 더욱 건강하고 풍부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김응본 공주대 겸임교수·전 농촌진흥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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