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차고 맑았다. 모래밭은 환했고 여울은 눈부셨다. 몸을 담그면 물은 쓸쓸할 정도로 서늘했고 모래바닥은 삼베같이 까슬까슬했다. 형들은 바닥을 발로 훑다가 발가락으로 모래무지를 잡아 올렸다. 너럭바위에 누워 올려다보던 구봉산 위 하늘은 한없이 푸르고 종달새는 아득했다.

물은 살아 움직였다. 물살이 맴도는 절벽 근처에서 빠져나오려다가 힘이 부쳐 물을 먹기도 했다. 물에 몸을 맡기고 함께 맴돌다 절벽을 타는 것이 유리했다. 절벽에 올라가 만세 부르고 되도록 멀리 뛰어 물살이 맴도는 곳에서 빠져나오기도 했다.

아는 형은 절벽 밑을 자맥질 해 들어가 직접 만든 작살로 팔뚝만한 메기를 잡기도 해 숭배를 받았다. 약을 풀어도 메기는 깊숙이 숨어 결코 수면으로 떠오르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나도 쑥으로 귓구멍을 막고 잠수하여 눈뜨고 강바닥을 훑어봤지만 메기를 만난 적이 없다. 잽싸게 튀어 달아나던 기름쟁이들이나 징거미 같은 잔챙이들뿐이었다.

칠어가 떼 지어 다녔는데 개구쟁이들이 나타나면 멀찌감치 물러났다. 씨알 굵은 물고기가 많은 가을에는 날 잡아 강 아래쪽에 물길을 가로질러 그물을 쳐 놓고 장정 여럿이 드문드문 서서 후리그물을 잡아끌고 내려가다 그물 친 곳 가까이 이르면 큰 물고기들이 물위로 튀어 올랐다. 곰 아가리 같던 장정 입에 물린 채 펄떡이던 물고기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이것이 지금으로부터 오십여 년 전, 갑천의 모습이다.

보가 생기면서 갑천은 생기를 잃었다. 천을 가로막은 콘크리트 둑을 타고 윗물만 흘러내리고 아랫물은 고여 썩었다. 섬뜩한 느낌을 주는 미끄러운 바닥과 몸에 달라붙는 조류 때문에 물속에 들어가 보고는 모두 질색을 했다. 누구는 몸에 반점이 생겼다고 했다. 보가 생기고 나서 나도 갑천과 멀어졌다. 하천도 이러할진대 세 개의 보에 가로막힌 금강의 신세는 어떠한가. 세종보 수문을 열고 몇 달이 지나자 산소호흡기가 필요할 지경으로 헐떡이던 강에 새로 모래톱이 생기고 다양한 새들이 돌아왔다고 한다. 늦게나마 다행이다. 강이 제대로 흘러야 온갖 숨탄것들과 더불어 사람도 살 수 있다.

권덕하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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