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고, 안전하며, 환경친화적이고, 무진장한 에너지원(原)은 없다. 우리는 화석연료를 비롯한 전통적 에너지원과 기술 개발을 통한 새로운 에너지원 등 여러 에너지 자원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적의 에너지 믹스(mix)를 찾는다. 에너지 믹스, 더 포괄적으로는 에너지 정책의 내용은 각 나라가 처한 지리적 상황, 부존자원, 정치적 안전성, 경제규모, 기술수준, 인구증가 등 사회적 상황 등에 따라 다르다. 이처럼 한 국가의 에너지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고려 변수가 많은 고차방정식이며, 각각의 변수가 가지는 불확실성 역시 크기 때문에 `정답`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에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써 각 국가는 전 지구적인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화석연료 에너지 부문을 탄소 제로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에너지전환`을 함께 실행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로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우리는 필요한 에너지의 약 95%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원자력을 준국산 에너지로 감안하더라도 자급도는 17% 정도일 뿐이다. 에너지 안보와 함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에너지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최상위 국가 아젠다로써 매우 장기적인 국가의 미래 전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우리는 변화하는 에너지 정세에서, 특히 에너지전환이라는 측면에서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우리나라는 2005년 발효된 교토의정서에 이미 2002년에 비준하는 등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사회의 흐름에 동참해 왔다. 또한, 2005년에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촉진법`에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리와 지원을 강화하는 등 에너지전환에 대비했다.

이어, 2006년 9월에 시행된 `에너지기본법`(현 에너지법)에는 환경친화적인 에너지의 생산과 사용 확대가 에너지 정책의 기본원칙으로 표명됐다. 2010년에는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신·재생에너지 및 지속가능발전 대책을 통합해 추진하기 위한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이 제정돼 에너지전환과 성장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구축된다.

이와 같이 우리는 에너지전환을 향한 결코 짧지 않은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에너지전환 문제가 태양광이나 원전과 같은 개별 에너지원에 대한 선호를 다투는 논쟁에 머무르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있다. 원자력이 전체 전력의 26% 정도를 감당하는 우리나라에서 탈원전에 따른 대체 에너지 확보가 중요한 도전과제인 점은 분명하지만, 에너지전환은 탈원전으로 인해 파생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할 것인지, 그 과정을 통해 어떻게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다.

우리가 에너지전환과 관련해 자주 인용하는 독일의 사정은 어떤가.

독일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구성된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가 8주간의 활동 결과를 `독일의 에너지전환 -미래를 위한 공동의 노력으로로 정리한다. 독일에서 탈원전 결정은 윤리위원회의 보고가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40년간 원자력을 둘러싼 정치 과정의 마지막 단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와 사정이 다른 독일에 적용가능한 해법을 우리나라에 직접 대입할 수는 없지만, 윤리위원회 보고서는 탈원전의 배경, 기본원칙, 검토규범, 에너지전환의 장애 요인과 독일의 성장 가능성 및 리스크 등을 포함해 독일의 에너지전환의 큰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에너지전환은 정계와 산업계와 시민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공동의 노력을 통해서만 완수되는 것으로 윤리위원회는 강조한다.

윤리위원회 보고서는 우리의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과 모순되지 않아 우리가 에너지전환의 큰 그림을 그리는데 참고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보고서뿐만 아니라 윤리위원회 내부에서 위원들이 서로 다른 입장들을 유지한 채 합의를 이룰 수 있었다는 점도 에너지전환의 해법 찾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에너지전환이라는 코끼리를 제대로 그려낼 수 있는 개인이나 단체는 있을 수 없다고 본다. 하지만 코끼리를 만져본 장님들이 함께 모여서 각자의 의견을 주장하고, 협의해서 종합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최소한 코끼리에 가까운 모습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에너지전환은 갈등이 아니라 협업의 계기로 작동해야 맞다. 김인구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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